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얼마 전 '집'에 대한 책을 읽고 지난 10년간 스쳐간 집들이 생각났다.
자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머무름으로써의 집들.
나는 왜 그 집들을 선택했었고 그때 그곳에서의 기억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신기하게도 오래 산 집보단 아우라가 좋았던 집의 기억이 더욱 선명했다.
그것들을 기억해 보려 사진들을 찾았는데 막상 내가 머물고 살던 집의 사진이 거의 없다. 호텔이나 남의 집 사진은 많으면서도 정작 내가 머물던 집 사진은 거의 없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많이 찍어 놓을 걸 그랬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시간과 추억은 묻어있지 않았나.
2011년 신혼집을 찾던 때. 원하는 지역에 전세가 별로 없었다(라고 한다 부모님들이 대신 보러 다녔으니, 회사원은 결혼해도 집하나 보러 연차 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나 모르겠다) .
아무튼 자리를 마련한 서울 가양동의 신혼집. 결혼하기 2달 전부터 계약을 시작했고 2년을 다 채우지 않았을 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사 생활 3년 차와 대학생 부부가 1억이 넘는 빚을 지고 시작한 결혼생활에 전세금을 올려 달라니. 누구에게 기댈 곳도 없으니 전세난민 생활의 시작이다.
집주인은 집을 팔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는 것이 어떻냐고도 물어왔다.
결과론적으론 그 집을 사고 세를 놓고 다른 곳에서 전세로 살면 되었지만,
당시 우리 주위엔 그런 조언을 해준 사람도 없고, 그렇기 위해 대출을 더 할 깜냥도 없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우리가 살던 집을 매수하려고 방문한 젊은 부부와 예비 시어머니. 남자는 당시 나보다 어려 보였고 여자는 훨씬 어려 보이고 늘씬했다.
여자를 보며 꿀이 떨어지는 남자와 그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예비)시어머니(아마 전주). 그리고 곧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심란한 2말 3초의 신혼부부.
우리의 직장을 지도 위에 찍고 거리를 재어가며 이사 갈 동네를 알아봤다.
말 그대로 '지도'였다. 네이버나 구글 지도가 아니라.
그래서 간 곳은 일산 행신동. 처음 이사를 해보니 날짜를 맞춰야 한다는 것, 둘 중 하나는 서둘로 이사 갈 곳에 가서 잔금을 치러야 하고 살던 곳에선 수선비 충당금을 정리해야 하고,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등등 새롭게 배웠다. 몸빵!!
아무튼 그것이 서울에서 외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시작이었는데,
이사 간 곳은 '잘되어 나간다'라는 좋은 기운의 곳이라 했고 실제로 더 넓고 햇살도 좋아서 머무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특히 이사 온 날 주변에 떡을 돌리니 (우린 여전히 돌린다. 요새는 떡 대신 쿠키나 케이크를 드리지만), 조금 이따 휴지를 선물해 주신 이웃 주민을 보고 이것이 서울과 경기도의 분위기 차이인가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으로 이사간지 3개월. 진짜 집의 기운이 좋아서였나?
박사후 과정이던 아내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용인의 제약회사 연구소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일산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
용인이라 하면 자연농원 (에버랜드) 나 알았지 그곳에서 살아야 할 줄이야.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집을 알아보려고 간 곳.
내가 서울역으로 출근을 해야 하기에 지하철역 근처로 알아보니 마땅한 집들이 보이지 않던 중 우연이 근처에 직장을 다니던 사람의 소개로 구경 간 상갈동.
동네 분위기가 나쁘지 않고 어찌어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그곳까지 분당선이 연결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서울역까지 출퇴근하면서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만다는 것도 깨달았고, 그 장시간 출퇴근이 무척이나 힘들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이곳은 잠시 들렀다며 다시 서울로 가게 될 거라고 머물던 곳에 집주인도 두 번이나 바뀌고 전세 혹은 반전세로 연장하면서 5년이나 살게 될 거라곤 진짜 꿈에도 몰랐다. 바로 앞에 경부고속도로를 보며 자동차 불빛들이 만드는 야경이 나쁘지 않다며 서로 위안하고 웃던 첫날밤.
별 수없이 아파트에 계속 살면서도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주택에 살면 땅이라는 생산이 불가능한 재화를 얻는 것 아니냐며 더구나 용인은 근처에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도 많으니 알아보던 중 흥덕동에 트리플힐스라는 타운하우스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방문.
당시 주택 2층을 세우는데 설계와 땅 모두 포함해서 7억.
바로 옆에는 용인-서울 고속도로도 있고.
그냥 어느 정도 자본이 필요한지 알았다는 것에 만족하자며 돌아섰다.
당시에 이경규와 강호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밥을 얻어먹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용인 근처에 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부부가 나왔다.
어디서 많이 봤다 하니 같은 내무실을 썼던 군대 선배가 아니던가.
그리고 얼마 전 거기에 산다는 사람을 만났다.
만약 우리가 그때 7억이어도 주택에 살겠다는 결정을 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데 주택이라 전세도 잘 안 구해지고 어려웠을까? 도리어 높은 가격에 차익을 얻었을까?
그보다 전에 효자동 놀러 갔을 때, 서촌이 뜨기도 전에 이곳은 어때?라며
양재천 근처에 주택들을 보며 개조하면 어때?라는 걸 현실로 옮겼다면?
아무튼 상갈동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중,
능력 있는 아내는 당시 회사에서 팀장으로 진급을 하고
우리 팔자는 용인에서 머물러야 하나 보다라며 그럼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하자며
옮긴 곳은 흥덕동. 조금 걸으면 광교 호수공원이 있고 조용한 곳.
그전까지 살던 복도식이 아닌 아파트.
둘이서 30평대에 사니 허리 이상 높이로 짐을 쌓을 필요도 없었다.
그곳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채광.
알아보던 다른 곳들 보다 집에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분위기.
그래서 바로 결정했었다. 그곳에 머물던 분도 해외 주재원으로 가서 좋게 성공해 떠나셨다는 말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왠지 우리 여기 이사하자마자 또 이직하는 거 아니야?라고 웃으면서...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위에 말했듯 오래 살 줄 알고, 집안에 조명이며 도배까지 다 바꾸고 들어갔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이직을 할 줄이야. 능력이 넘쳤던 아내는 아주 좋은 기회로 서울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서울로의 컴백이 막상 마음을 놓고 포기하니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여기 계약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럼 일단 둘 다 장거리 출퇴근 좀 해볼까?
주말이면 광교 호수공원을 걷고 저녁이면 노을이 유달리 아름다웠고
햇살도 충분하다 못해 많이 들어왔고 베를린공대서 건축하던 교수와 사촌동생이 방문했을 때도 너무 잘 꾸몄다는 그 집을 두고 (뭐 내 집은 아니었지만)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한 것은 둘 다 모두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소진되는 에너지 때문에.
더 이상 용인에 머물 이유가 없으니 돌아가자고.
그런데 하필 그때부터 부동산 가격은 치솟기 시작하는데.
서울의 아내 직장을 중심으로 대중교통 출근 30분 안으로 가능한 곳만 알아봤다.
전부 서울 도심권. 동쪽으로는 왕십리 서쪽으로는 서대문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을 떠나 산 지 7년. 그 사이 이렇게 변했던가 하며 놀라기도 하고, 부동산에 무심했던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글로벌 유동성은 왜 이리 넘쳐나는 거냐며 그 사이 나는 저금리 혜택도 못 받은 게 바보 같다고, 정부의 정책도 원망스럽고, 무슨 이유건 주택 구매를 결정했던 친구들은 차익을 실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결혼한 지 10년도 안되었는데 5번째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쓰는 이사 비용에 주거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감과 허탈감이란.
아무튼 이사는 해야 하고 알아보던 중 방문한 옥수동.
그중 말만 들어도 부담되던 단지라 방문 리스트에도 올려놓지 않았던 곳.
그래도 한 번 가보자며 방문한 집에 들어서니 저렇게 한강도 보이고 , 와 이 놀라운 일조량은 뭐지 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아우라.
알고 보니 서울에서 아내를 픽업해 용인으로 내려올 때 지나오며 여기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라며 부러워했던 동네였다니.
그리하여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월세의 부담도 있고 여전히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 여러 집을 이동하며 무엇이 나에게 맞는 집인지, 내가 꼭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내 소유의 집을 갖지는 않을 것 같다 (느낌이다).
꼭 가져야 할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목처럼 불편함이 주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에 살아보고 싶다.
재미가 있는 집 그리고 해가 비치어 따듯한 집. 카페에 가지 않아도 머물며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집. 주차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집. 직장이 멀어 출퇴근으로 에너지의 절반을 소비하지 않아도 될 집 등등.
앞으로 또 어디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머무름에 평안함이 있을 곳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