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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는 모든 걸 다 하는 사람

감에서 AI로, 달라진 20년의 이야기

by 준케터

“MD는 모든 걸 다 하는 사람.”
20년 전 패션 업계에서 이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상품 기획, 원자재 수급, 생산 일정 조율, 샘플 수정, 매장 VMD, 판매 분석…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을 오가며, 그 모든 걸 동시에 해내야 했다.

그 시절, 패션 MD는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이었다.
패션학과 졸업생뿐 아니라, 전공과 상관없이 업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버티는 게 곧 실력의 증명이었고,
“센스 있는 MD 한 명이 브랜드를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 역시 유명 패션 브랜드의 기획 MD로 일하며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판매 분석철은 전부 손으로 작성했고, 매장별 매출표를 하나하나 엮어가며 시즌의 흐름을 읽었다.
데이터는 한 달에 한 번 종이 보고서로만 받아볼 수 있었고,
그래서 현장에서 얻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소중했다.
“이번 주엔 이 컬러가 잘 팔려요.”
“손님들이 이런 소재를 많이 찾으세요.”
그런 말들이 다음 시즌 기획의 첫 문장이 됐다.

그때 좋은 MD의 조건은 명확했다.
센스가 좋고, 감각이 뛰어나며,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사람.
해외 쇼룸에서 샘플을 만져보고 ‘이건 된다’고 확신하는 직감이 곧 경쟁력이었다.
데이터는 참고일 뿐, 판단의 중심은 ‘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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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그 시절 판매의 무게 중심은 백화점과 로드숍, 그리고 일부 홈쇼핑이었다.
매장의 매출이 곧 브랜드의 성적표였고,
오프라인 판매가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매장 동선, 진열 방식, 직원 교육…
모두가 현장에서 이루어졌고, MD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장을 오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채널의 중심이 옮겨갔다.
자사몰, 라이브커머스, 인스타그램, 글로벌 플랫폼까지
판매의 무대가 넓어지고 깊어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은 더 이상 ‘보조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의 메인 무대가 됐다.
이제는 온라인에서 주목을 얻고, 오프라인에서 경험하게 하는 구조가 당연해졌다.

상품이 잘 팔리기 위해선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온라인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까지 설계하는 것이
지금 MD의 역할이 됐다.


AI가 바꾼 하루

2025년, MD의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판매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광고 전환율, 검색 키워드, SNS 반응이 대시보드에 펼쳐진다.
매장 직원의 구두 보고 대신, AI가 리뷰를 분석해 고객의 선호와 불만을 정리해 준다.
과거엔 몇 주 걸리던 분석이 이제는 몇 분 만에 끝난다.

이 변화는 필수 역량까지 바꿔놓았다.
트렌드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그 감각은 데이터와 AI 위에서 완성된다.
수요 예측, 판매 패턴 분석, 이미지 생성…
생산 방식도 한 번에 대량으로 찍어내던 시즌 중심에서,
소량·다품종·민첩한 리오더 체계로 바뀌었다.

이제 MD는 기획, 생산, 마케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며 움직인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

20년 전, 나는 감에 의지했다.
지금은 AI에 의지한다.
도구와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MD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좋은 상품을 기획하고,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
이건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MD’의 정의는 달라졌다.
과거엔 센스와 감각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그 감각 위에 AI를 얹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감이 만든 기획이 AI와 결합할 때,
비로소 지금 시대의 ‘완벽한 MD’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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