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확실히 가을인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밤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보다는 조금 더 산 쪽에 가깝기 때문에 잘 때 문을 열어 놓으면 벌써 춥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이라고 하니 가장 먼저 '수확'이 떠오릅니다. 전원주택과 텃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여름 내내 우리 식탁을 책임졌던 각종 채소들이 가을을 맞아 마지막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아마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흙이나 잡초들을 꺼려하던 아이들이 1년여 만에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전원주택에 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텃밭이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 형이랑 함께 경기도 하남 근처에 주말농장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식물을 심고, 수확을 했던 기억은, 제 어린 시절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였습니다.
저도 제 아이들에게 텃밭을 일구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아파트에 살아도 주말농장 등으로 경험시켜 줄 수 있었지만, 집 마당에 위치한 텃밭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가족만의 텃밭. 생각보다 다양한 식물들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첫해에는 여름에 이사 왔기 때문인지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고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농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는 방법은? 그냥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됩니다. 요즘에는 블로그도 많이 하기 때문에 네이버에 원하는 작물을 '텃밭'이라는 검색어와 함께 검색하면 정말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터넷, 그리고 포털이 준 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치부심하고 맞은 올해, 3월부터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고 검은 비닐로 멀칭까지 하고 작물들을 심었습니다. 아직은 씨를 뿌려서 작물을 키우진 못했고요. 대부분 모종을 사서 심었습니다. 요즘은 모종도 쿠팡이나 네이버에서 사면 하루, 이틀 만에 배송을 해줍니다. 모종이 시들할까 걱정했는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다들 싱싱하게 오더라고요.
그렇게 모종을 심어주고, 때가 되면 물을 주면서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일궜습니다.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확이 시작되는 것은 여름부터인 것 같습니다. 봄에 심어둔 작물들이 여름이 되면서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쑥쑥 자랍니다.
아이들은 수확할 때 정말 즐거워합니다. 자기가 물을 주면서 소중히 돌본 작물들을 수확하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수확한 작물은, 그냥 사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먹습니다. 평소에 잘 안 먹던 가지나 당근, 호박도 직접 수확해서 먹으니 맛있어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들이 전혀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이 키웠던 작물들의 뿌리를 더 관찰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가지뿌리, 대파 뿌리, 고추 뿌리 등을 담아서 흙이나 물을 넣어보기도 합니다. 아마 아파트에 살았으면 절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스스로 이런 식물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올해 텃밭 농사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물 중 하나는 애호박이었습니다. 그런데 호박은 덩굴식물이라 텃밭 옆 펜스를 휘감아 덮어버리더군요. 아이들은 호박의 뿌리가 저 멀리 있는데 멀리 펜스까지 뒤덮은 것을 봤고, 호박이 영역을 넓히기 위해 스스로 펜스를 감는다는 것을 알았냈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 중 하나로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을 꼽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마당에서 정말 많은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어른들은 귀찮아하는 잡초뽑기도,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작은 축구공 하나를 던져주면 마당은 바로 미니 축구장이 됩니다. 예전에는 친구가 놀러 오니, 친구와 함께 미션놀이도 하더군요. 줄넘기를 몇 번 하고, 트램펄린에서 몇 번을 뛴 뒤, 어떤 나무를 만지고 돌아오는 미션 경기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고 우리만 있는 마당은 바로 식물원이 되기도 하고 축장이 되기도 하고,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역시 백미는 물놀이입니다. 물놀이 중에서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는 물총 싸움이죠. 아이들에게 물을 채운 물총만 쥐어주면 30분은 훌쩍 지나갑니다. 수영장이나 분수 매트는 놀고 나서 뒤처리가 힘들지만, 물총 싸움은 그런 게 없어서 좋습니다.
아, 그리고 사실 저는 또 하나의 로망이 아이들에게 마당 한편에 모래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조경공사를 할 때 모래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모래를 채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모래를 구매해서 채워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모래놀이터에서 엄청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래놀이터는 1년도 안돼서 철거되는 운명을 맡았는데요... 이유는 우리 마을에 사는 길고양이들 때문이었습니다. 고양이들이 우리도 모르게, 밤이 되면 이 모래에서 볼일을 보고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자기들이 볼일을 본 뒤 모래로 그걸 덮어버린다고 하더군요.ㅠㅠ 그렇게 모래놀이터는 철거됐지만, 그래도 길고양이 덕분에 마을에 쥐가 없으니 다행인 걸까요?
아무튼,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흙과 모래, 그리고 잡초들과 여러 작물들을 만지고 또 그 속에서 뛰어놀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놀러도 못 가는 이 시국에, 그나마 전원주택에 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