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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Jun 01. 2023

아이 울리기

얼마 전에 "미국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울면 삼십 분을 울어도 울도록 두고, 안아주지 않는다."는 유튜브 쇼츠가 첫 추천 영상에 떠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댓글을 보다가 "애가 울면 바로 달려가서 안아주고 그러니까 힘들지. 그렇게 안 해줘도 되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안아주고 힘들다고 그러더라."라는 댓글을 봤다. 조금 불편했다. 나는 아이의 울음에 아이의 요구사항에 기민하게 반응했던 엄마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아이와의 애착 형성이 잘 되고,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소아정신과 의사의 강의를 통해서 듣고, 이것을 위해 몇 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최근 연구에서는 충분히 아이를 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관련해 ’ 아이가 실컷 울게 내버려 둬라.’라는 기사도 있었다. 나도 이번에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청을 높여 우는 아이를 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얼른 달래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울도록 내버려 둬도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워릭대학교 발달심리학과 Dieter Wolke 교수 연구팀은 18개월 동안 179명의 아이를 둔 엄마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아이가 울 때 얼마나 자주 개입하는지 평가했다.
연구 결과, 18개월까지는 아이를 울게 내버려 둬도 부모와의 애착 형성, 행동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Wolke 교수는 “아기가 울 때 즉각 개입해서 요구를 들어주기보다,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반응하는 것이 자율성을 키우는 데 더 도움이 된다”라며, “대부분의 아이는 큰 소리로 울 때 바로 달래주지 않아도 잘 성장한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에 게재되었으며, The SUN, Healthday 등의 외신에서 보도했다.
실제로 ‘아이가 울면 달래줘야 할까? 울게 내버려 둬도 될까?’는 육아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분분한 주제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연구는 ‘아이가 울어도 잠시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는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똑게육아(저자 김준희, 출판 아우름)’에 따르면, ‘프랑스 육아서는 아이가 울면 일부러라도 5분 기다리라고 말하는데, 이는 아이의 인내심도 길러줄 수 있고, 그동안 아이가 우는 원인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육아법은 ‘울어야 부모가 자기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울지 않아야 보러 와준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하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이닥 뉴스
’ 아이가 실컷 울게 내버려 둬라’
2020.03.26


아무래도 엄마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 같다. 고마운 연구이다. 그에 비해 기사의 제목은 자극적인 것 같다. 연구 결과는 울려도 큰 문제없다 정도인데. 제목은 실컷 울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니. 18개월 미만의 아이가 이유 없이 떼쓰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도와줘서 해결 가능한 상황이라면 반응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오히려 더 큰 아이가 흥분해서 운다면 잠깐 시간을 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 제목이 맞을 수도 있다. 배고픔, 더움, 찝찝함 등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울음이 시작될 때.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는 특히나 어린아이의 울음에는 적당히 반응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상황이 안되면 아이가 울어도 달래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이 울려도 된다는 연구 덕에 마음 편하게 울릴 수 있겠다. 아이를 보다 보면 아무리 열심히 반응해 주려고 해도 아이가 우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아이들은 문제없이 크는 듯.


5분 정도 울리라는 것도 글쎄... 아이가 우는 원인 파악에 5분이나 걸릴 일인가 싶다. 우리 아이가 태생이 떼쟁이 울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생아 때는 밤에 재우려고 하면 엄청 울었지만, 전반적으로 이유 없이 울면서 떼를 쓰지는 않았었다.



다시 유튜브 쇼츠 댓글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이 저렇게 울리면 안 좋다. 어릴 때 감정적인 기억이 중요하다.", "어린이집 교사가 여러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의 어렵다.", "한 명을 안아주면 다른 애들도 안아줘야 하는데, 그러다가 몸 상한다." 등의 맥락에서 적힌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에서 적힌 글이 많았는데, 그냥 눈에 띄는 글 중 하나가 내 마음을 참 불편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아이를 안 키워 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안아주는 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다. 특정 시기에는 자꾸 안아달라고 하는 아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육아를 힘들게 하는 것은 먹고, 씻고, 싸고, 자는 기본적인 것들을 수행하는 과정, 자꾸 이거하고 놀자, 저거 하고 놀자, 밖에 나가서 놀자고 하는 끝없는 아이의 요구사항과 변덕, 꽤 긴 기간 주양육자만 찾는 아이의 속성 등에 있다. 아이가 모든 순간에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따라주면 좋겠는데. 아이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어느 날은 부드럽게 잘 넘어가다가도 갑자기 아이가 거부하기도 하고.


저분도 안아주는 것만 지칭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의 요구사항에 기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맥락에서 적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엄마는 아이가 우는 소리를 엄청나게 오래 들어야 한다. 사실 아이가 울면 안아주는 행위는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엄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울음소리 듣고 있는 것도 괴롭다.


아이를 실제로 하루종일 돌봐보면 아무리 나같이 아이의 울음에 요구사항에 바로바로 반응하려고 노력을 해도 특정 순간에 아이는 울게 되어 있다. 아이는 적어도 세 돌까지는 거의 하루종일 엄마랑 함께 있고, 상호작용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아이랑 이유식을 먹은 다음에 난장판이 된 식탁 주변을 치울 때 잠시 아이를 범퍼 침대 안에 두고,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리한 적도 많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자꾸 치우고 있는 내 주변으로 기어 와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이 참 괴로웠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이 보면 순한 아이였다. 울지도 않을 것 같은 아이. 그런데 이 세상에 안 우는 아이는 없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아이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무한정 어질러지는 집을 어느 순간에는 치워야 하기도 하고.


언젠가 "아이 돌봄 서비스"에서 원하는 시간에 아이를 잠깐 봐줄 수 있다고 올린 글을 우연히 봤을 때,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최우선합니다. 집안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은 글을 봤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말 이해된다. 이렇게 해야 돌보미 분도 스스로 덜 괴로우실 수 있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면 아이가 징징대지도 않는다. 아마 이 분이 이렇게 단호하게 적으셨던 것은 꽤 경험이 많거나,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해 내려는 욕구가 강한 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혹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면 이런 분께 부탁했을 것 같다.


나는 원래도 내가 함께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님께 혼나는 것도, 주변 사람에게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듣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혹시 그런 피드백을 받게 되면 다음에는 그 피드백을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었고, 그것이 내 성장 동력이기도 했다. 어쩌면 극도의 인정 욕구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의 울음도 나에게는 같은 맥락이었다. 아이가 울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때, 내가 엄마의 역할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아이한테 3년 정도 최선을 다하고 나면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가 온다. 평생 이렇게 아이의 요구사항에 바로바로 반응하면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3년 정도 지나고 나면 "엄마 지금 OO 해야 하니까 기다려줘."라고 하면 기다려준다. 착한 아들을 둔 나의 복일 수도 있고. 그동안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했던 나의 노력 덕분에 아이가 엄마에 대한 신뢰가 두둑하게 쌓여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저 영상의 진위 여부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어린이집이 모두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니까. 쇼츠라서 내용이 왜곡된 것일 수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누가 해도 어려운 일이다. 정말 직접 하루종일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그래서 정말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 진심인 내가 선생님을 하면 여러 명의 아이의 말과 행동에 마음이 쓰일 것 같아서.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열심히 하다가도 직업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이는 것이 정말 이해가 된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야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엄마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내 계획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넘어가면 최대한 얼굴을 많이 안 보고 각자 열심히 사는 것이다. 지금부터 서서히 거리감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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