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구의 엄마 Jun 05. 2023

우리 엄마는 셋을 낳았는데 나는 외동을 키우는 이유

두서없이 적은 ‘저출산에 대한 생각’ 세 번째 글

아빠를 육아에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에 대해 글을 적다 보니...



아이 셋에 삼촌들 뒷바라지까지 하신 우리 엄마가 생각났었다. 우리 엄마는 하루 종일 밥 차리고, 치우고, 빨래하다가 하루가 간 것 같다고, 삼촌들이 그래도 너네 기저귀도 많이 갈아주고 그랬다고 우리 어릴 때를 회상하시곤 한다. 어쩌면 우리 엄마 세대가 아이를 많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대가족 상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누군가와 상호작용 하기를 원하는데, 집에 식구들이 많으면 누군가와는 눈을 맞출 수 있고, 기저귀가 불편해서 울면 누군가 갈아주기도 하고, 배고파하면 밥을 줄 수도 있었으니까. 육아에 대한 노력이 분산되다 보니, 육아가 너무 괴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 같다. 대신 여러 명을 챙겨야 하는 삶에 지치셨을 것이다.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내가 엄마라면 남을 챙기는 노력을 하느니 내 아이 한 명 더 낳아서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할 수 있었겠고, 엄마는 6남매셨으니 아이 두세 명 정도는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남아 선호 사상이 있던 시절이라 아들을 낳고 싶으셔서 또 낳으려고 했던 마음도 있으셨고. 엄마가 명시적으로 말한 이유도 있고 내 추측도 섞여있지만. 이러나저러나 대가족과 저출산은 트레이드오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한테 너무 매여있지 말고, 엄마도 일도 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워킹맘을 권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관 외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엄마가 주양육자가 돼서 키우는 경우에 이 말이 통하는 것은 적어도 아이가 초등학생 2~3학년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를 직접 키워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까지는 사실상 엄마 손길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 이후에는 뭔가 다른 걸 해볼 수 있지만 아이가 2-3명이 넘어가면 그것도 쉽지 않고. 경력 단절도 문제이고. 극복해 내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말이다. 나도 꼭 이 난관을 극복해 내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될 생각이다.




일하는 삶을 사랑하는 내가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이와 함께 한 시간에서 나 스스로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어쩌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나만 손해이다.


다행히 아이는 참 잘 크고 있다. 내가 아이와 함께 해준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아이에게 참 고맙다. 




난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 명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정으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동생을 낳아주는 것이 맞다. 집에서도 소사회를 경험할 수 있게.


다만 누가 보면 잘 키우려고 하나만 키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이 하나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게 아이를 키웠기는 하다. 이건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 뿐이다. 한 명을 키우든 두 명을 키우든 더 많은 아이를 키우든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둥이의 장점을 알면서도 한 명을 키우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도 한 명이면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부모를 찾지 않는 시기가 오면 그 때라도 엄마가 다시 일을 해볼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이를 위해서라면 연년생을 낳아서 특정 시기까지 딱 키우고 둘이 알아서 잘 크게 두면 좋겠지만,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약 세 돌까지는 아이를 또 낳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리고 계속 ’아, 조금만 더 있어줘야겠다. 생각보다 오래 같이 있어줘야 하네..‘ 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경력 단절의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남자 의사 분이 “요즘 엄마들은 애 키우려고 결혼하는 것 같아.”라고 말을 시작 하시는데, 참 기분이 나빴다. 아이는 키워보고 하시는 말씀이신지. (개인적으로 직접 아이를 키워본 정우열 의사 선생님 말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남자분의 말씀에는 아직 공감을 못 해본 듯하다.)


이렇듯 한 켠에서는 요즘 엄마들이 너무 애 키우는 데 집중을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할 필요 없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나한테 요즘 이런 내용을 담은 의사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광고가 자꾸 뜬다. 열심히 애 키운 나를 자꾸 질타하는 것만 같다. 죄송하지만, 그분께 지금 아이를 혼자 한 달만 하루도 빠짐없이 돌봐 보시라고 말씀드려보고 싶다.


아이가 무탈하게 크도록 하는 데에는 어른의 손길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다들 괴롭지만 버티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 아이 옆에 누군가는 있어야 하니까. 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기관에 아이를 보낸다고 아이를 낳기 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맡길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고, 아이 컨디션도 오락가락이다. 어느 날은 갑자기 유치원에 못 가는 날도 생긴다. 이제 코로나는 감기와 같아졌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코로나 말고도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이 자주 찾아오고,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올 때도 있고, 열이 날 때도 있고. 이럴 때마다 언제든지 아이를 갑자기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도, 대학을 다닐 때도 여자 아이들이 성적이 좋은 경우가 꽤 많았다. 열심히 사는 여자 애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같은 여자로서 잘 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의 배려로 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자란 여자들이다. 이런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은 것이다. 당연히 아이도 잘 키우고 싶지 않을까. 아이가 낳으면 끝이 아니라 어른 한 명이 아이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안 뒤, 잠시 미래가 걱정되다가도... 눈앞에 당면한 아이 키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거다. 그래서 아이랑 최대한 상호작용해 주고 잘 놀아주고 옳은 방식으로 옳은 행공을 알려주면서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이 입장에서의 육아 지침을 따르는 것이 진짜 힘든 것도 너무 잘 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안 고쳐지는 행동에 대해 천 번을 반복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절에서 묵언 수행하는 스님보다 더 어려운 Task를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다들 그 Task를 실패한다. 대부분 화내고 후회하고. 그것 때문에 또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사실 아이가 징징대지 않고, 공원에서 놀이터에서 아이랑 몇 시간씩 신나게 놀고 들어오고 밥도 잘 먹고 그 좋은 기분으로 엄마가 설거지하는 것도 아이가 기다려주면서 혼자 잘 노는 날은 몸은 좀 힘들어도 육아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고, 보람도 있다.




내가 이제 조금씩 다시 일하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고 말하면, "맞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 말도 조금 슬프다. 그렇다면 아이만 돌보는 엄마의 삶은... 무엇인가. 그럼 아이를 왜 낳으라고 한 것인가. 왜 조금 낳는다고 뭐라고 하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어느 정도 사회적 성취감도 느끼면서 육아 때문에 내가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관 외에 추가적인 다른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모님의 도움을 받기는 싫은 내 고집이 문제이기도 하다. 어디에선가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이모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 전 세대는 정말 먹고살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하신 분들도 많기 때문에 배부른 소리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 세대가 생각보다 아주 풍요롭지는 않다. 교육은 꽤 받았고 먹고는 살지만, 내 집 마련이라는 것은 포기한 채 지내는 사람도 많다.


여전히 고민이다. 아이 키우는 것은 행복한 일임과 동시에 꽤 괴로운 일이다.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기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런 이야기하면 항상 조금 날카로워진다. 나도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아를 하찮게 보는 것 같은 시선, 아이와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하려고 노력했던 내 시간들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는 말 때문에 기분 나빠지는 경험도 많았기 때문에. 직접 해보면 그 무엇보다 힘들고, 가치 있는 시간인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울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