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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준 May 23. 2021

보다 긴 호흡으로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어서 오세요. 천국의 책방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브런치에서 옮기는 첫 번째 글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글을 쓰게 되었고, 또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서 기록을 남깁니다. 이 글은 보다 더 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장은 조금 더 길어지고, 문단은 더 넓어지고, 쓰고자 하는 그 무언가의 물성은 더욱 두터워지겠죠. 보다 긴 호흡으로요.    


  제게 책을 읽는 즐거움과 글의 아름다움을 가르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네가 책을 쓰는 날이 오게 된다면, 네가 쓰고 싶은 책의 물성을 상상해 보아라. 크기, 두께, 종이의 질감이나 표지의 색을 상상해 보아라.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면 그 책과 같은 판형의 종이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거라. 사람은 자신이 쓰고 있는 종이의 넓이만큼 상상하고, 또 그 넓이에 어울리게 문장을 쓰는 법이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가 될 생각은 없기에 선생님의 조언을 듣는 일은 잘 없었습니다. 그래도 책을 좋아하기에 인스타그램에서 짧은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첫 번째 책은 정확히 손바닥 한 뼘 크기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글을 쓰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읽는 책은 전혀 재미가 없고, 쓰는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줄 끄적이다 지우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쉬면 좀 나을까 싶어 몇 주간 쉬어도 보았지만, 이제는 몸마저도 글 쓰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혹부리 영감의 노래 주머니가 똑- 하고 떨어져 나간 것처럼 제 마음에서도 글을 쓰는 주머니가 사라진 느낌입니다.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쓸 때면 숨이 차고 무언가 얹힌 듯한 기분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거대한 탑이 불에 타 무너지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글이라는 나무와 책이라는 종이로 높게 쌓인 탑은 맹렬히 타올랐습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불길이 잦아든 후에는 다 타고 재만 남아 무릎 아래 높이만큼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다시 무언가를 쌓기 위해 나무와 종이를 올려보지만 잿더미의 열기에 의해 이내 곧 또 다른 잿더미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애써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나약해지고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태울 것도 없고 더 타버릴 것도 없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태우려면 다 태우자는 마음이었을까요? 무너진 잿더미 앞에서 나는 후- 후- 하고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불꽃은 숨을 불어넣는 그 순간에만 잠깐 벌겋게 타오르다 금세 식어버리고 맙니다. 더 오래 불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숨을 참다 가능한 오래 숨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보다 긴 호흡으로 나는 마음에 뜨거운 무언가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력일 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있고, 욕심일 수도 있으며, 아직 잘 모르는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숨을 불어넣은 후에 나의 몸은 땀과 열기로 익어 갑니다. 그것이 마주한 불꽃의 열기 때문인지, 거친 숨으로 달아오른 나의 몸 때문인지, 아니면 무너져 내린 잿더미의 잔열인지 모르겠습니다. 꿈에서 깼을 때 시트는 땀으로 젖어있었고, 나는 어째서인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친 숨을 정리하고 나는 다시 책상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된 기분입니다. 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브런치에서도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폐활량을 가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뼘 크기의 공간에서 양 손을 활짝 펼칠 만큼 넓은 공간으로. 나의 생각은 얼마나 크게 확장되고 깊게 타인의 마음에 침투할 수 있을까요? 보다 긴 호흡으로 나는 숨을 들이켭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가슴이 뛰고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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