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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준 Aug 10. 2021

이른둥이

제13회 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2차 - 글 부문 지원

  서랍 속 묵은 옷을 정리하는 연말의 밤이었다. 육 평의 작은 원룸에서 작은 아이를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있었다.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사랑의 결실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애정을 담아 충범, 연미 하며 이름으로 불렀다. 둘은 봄에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작고 귀여운 엄지로 지었다. 방은 좁지만 부부는 행복했고, 아이는 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그날 새벽, 이슬에 옷깃이 젖는 느낌이 들어 아내가 일어났을 때 임부복에선 붉은 꽃잎이 피었다. 뱃속에 잠들어 있던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보고 싶어 뱃속을 두드린 것이다. 녹색과 적색 조명이 교차하며 병원을 향해 달린다. 꽃잎의 주름 속에서 새 생명은 세상 밖으로 손을 뻗으며 태어났다.

  몸무게 팔백오십 그램의 이른둥이. 엄지는 엄마의 뱃속에서 스물일곱 번의 일주일을 보냈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가 아이의 새 요람이 되었다. 투명색 원통형의 플라스틱은 머리 위 형광등 빛을 조명 삼아 모빌처럼 빛났다. 부모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나왔건만, 태어나고 일주일 동안 부모와 아이는 마주할 수 없었다. 엄지의 몸은 너무나 작았고, 연미의 몸은 안정을 해야 했으며, 충범의 몸은 특근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 해의 마지막 날, 가족은 모두 떨어져 있었다.

  새해를 넘기고 나흘이 지난 후였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부모는 엄지를 처음 만났다. 간호사 선생님은 면역 문제로 인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사십오 분뿐이라고 설명했다. 부부는 뱃속에서 넉 달은 더 있었어야 할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이름 그대로 아이의 손은 아빠의 엄지손가락만큼 작았다. 눈조차 뜨지 못하는 이 작은 생명. 연미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충범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충범은 아이의 이름을 엄지로 지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연미를 품에 안고 함께 울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어수선했다. 정해진 면회 시간에 맞추어 또 다른 이른둥이의 부모들이 중환자실 근처를 서성였다. 이곳은 기쁨도 슬픔도 선명하다. 부모의 낯빛만 보아도 아이의 건강을 알 수 있다. 퇴원을 앞둔 부모에게선 일종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여유는 선잠처럼 갑작스레 깨기도 한다.  며칠 전까지 씩씩하게 자라며 부모에게 희망을 주던 옆자리의 생명이 어젯밤 장이 터져 수술을 받았단 소식을 접했다. 부모는 수술 때부터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손을 모은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 충범과 연미도 덩달아 몸속의 생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요람을 지키고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충범은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 해가 지고 난 후에 돌아왔다. 그는 하수도에서 일했다. 유류를 방해하는 쓰레기와 오물을 치우며 그곳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소란스러운 서울의 도로 아래 어두운 굴 속. 하수도 도면 위에 빨간 엑스자 표시를 하며 지나온 곳을 체크한다. 머리 위 헤드라이트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빛이고, 길잡이였다. 용역의 오야 아저씨는 이곳에 오래 있으면 두더지처럼 두 눈이 멀게 된다며 겁을 주곤 했다. 겨울이 와 해가 짧아진 후로 햇빛을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정말 눈이 멀게 되면 우리 엄지는 어떻게 보지? 하고 충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두더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충범의 꿈은 디자이너였다. 어둑한 시골을 벗어나 조명이 가득한 서울에서 옷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강남에 출퇴근하고, 육 평 방에서 그림을 그리다, 수습생 시절에 연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월급 칠십만 원,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연미가 자신보다 더 옷을 감각적으로 그린다는 점이었다. 아내의 꿈을 위해서 충범은 스스로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지만 언젠가 충범은 이곳을 벗어나고야 말겠다. 마음을 먹으며 오늘도 어둠보다 더 어두운 서울의 똥물을 헤치며 일을 했다.

  이월 십 이일, 마침내 엄지의 무게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중환자실에서 연미는 서투른 매듭으로 일회용 앞치마를 두르고, 손가락 사이사이 거품을 내며 손을 꼼꼼히 닦는다. 오늘은 연미가 엄지를 처음으로 품에 안을 수 있는 날이다. 인큐베이터 앞에 놓인 등받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엉성한 자세지만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기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홀로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아이를 꼭 끌어 안은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퇴근한 충범은 붉게 충혈된 아내의 눈을 보았다. 감격스러웠으리란 생각과 달리 아내는 정말 엄지가 내가 낳은 아이가 맞냐며 억울하고 짜증스러운 울음을 내었다. 가장 슬픈 것은 아기의 울음소리였단다. 시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엄마의 품에서 단 한 번도 엄지는 울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평소에 아이가 곧잘 운다고 이야기했지만 낳은 엄마의 입장에선 서운한 일이었다. 아이가 날 엄마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정말 이 아이가 내 아이는 맞는 걸까?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숨을 속으로 삼키고만 있었다. 그날 연미는 엄지를 대신해 종일 울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울음의 연속이었다.

  울지 않는 엄지를 보며 부부는 아이가 어딘가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여도 어쩌면 목이나 폐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의 밥 한 숟갈 삼키기 힘든 목구멍을 아이가 가져간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의 타버린 마음을 아이가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제 부모의 관심은 아이가 당장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손가락 다섯 개, 콧구멍 두 개,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 또한 걱정인 것은 분명했다.

  처음 안은 날 이후로 걱정이 생길 때면 연미는 집에서 바느질을 했다. 살면서 가장 익숙한 일이었다. 연미는 사람들의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동안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들의 옷을 만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시작한 그림이 일이 되었고, 충범을 모델 삼아 옷을 그리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서울 한쪽에서 비집고 살기 위해서 연미는 옷을 그린다. 일이 즐거운 건 오래전에 끝났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펜을 놓지 않는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지만 언젠가 연미는 충범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연미복을 입히겠다. 마음을 먹으며 옷을 그리고 바느질을 한다.

  새벽 다섯 시, 충범이 일을 나가면 연미는 방 한구석에서 면회 시간까지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인큐베이터 장갑 너머로 느낀 엄지의 크기를 평면 위에 옮겨 그린다. 눈을 감고 있으면 엄지가 손 위에 잠들어 있을 것만 같다. 신사복을 위주로 디자인을 하던 연미에게 딸아이의 옷은 소매 한 칸보다 작게 느껴졌다. 옷 역시 자투리 원단으로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완성된 옷을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보곤 놀랐다. 엄마의 배를 충분히 덮는 딸의 옷. 엄지는 절대 작지 않다. 그녀는 이 커다란 생명을 배에 품고 살았던 것이다.

  본래 배냇저고리는 흰색 천으로 만든다 했는데, 남은 천으로 옷을 만들다 보니 연미의 배냇저고리는 붓꽃의 스미는 자주색, 나팔꽃의 옅은 보라색, 수국의 연한 파란색으로 층을 이루며 쌓이기 시작했다. 삼 월이 끝나갈 무렵 방에는 소녀의 옷들로 가득했다. 드레스만으로 꽃바다를 이룰 수 있을 만큼 흐드러진 모습이었다. 한 번은 충범이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하겠다며 단추를 달았다. 삐뚤빼뚤 엉망인 모습에 부부는 까르르 웃기도 했다. 옷을 만드는 동안 부부는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지하도를 체크하는 엑스자 표시와 꽃밭을 수놓은 드레스가 쌓여감과 동시에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마저 저 먼 북쪽으로 넘어갈 때쯤 병원에서 아이가 퇴원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 개월 전 서로의 품에서 엉엉 울던 어린 부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소녀를 만나기 위한 채비를 한다.

  백이십 여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낯설었다. 중환자실을 들어가는 길 함께 이겨내고, 걱정했던 또 다른 엄지의 엄마들이 눈물로 축하를 건넸다. 환대와 함께 부부는 반짝이는 요람으로 함께 걸어간다. 마치 호두 같은 플라스틱 껍질을 사이에 두고서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엄마는 벽 너머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가야. 우리 언젠가 멀리, 멀리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자. 나와 함께 가자. 엄마 품에 안겨도 좋아. 엄마가 보자기로 네 몸을 묶고서라도 갈게. 그러고 나서 우리 날아가자. 아빠도 휴가 쓰고 어두운 하수도에서 잠시 벗어나자. 거기는 아가가 아직 보지 못한 여름이 있는 곳이란다. 언제나 여름이어서 언제나 이쁜 꽃이 피고 있어. 그러니 함께 가자.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 너는 추운 겨울에 태어났지만 아빠와 엄마의 마음을 녹여주었단다. 너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어."

  소녀는 울지 않고 새근새근 숨을 쉬며 엄마를 응시한다.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딸의 모습에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터질 것 같아 연미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그런 아내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 충범이 말했다.

  "있잖아, 연미야. 이제 우리 엄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자. 그 이름은 우리 아이를 부르기엔 너무 작은 이름인 것 같아."

  오랜 기다림 끝에 틈이 열리는 인큐베이터를 보고 있으니 함께 잡은 부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맘 놓고 사랑하는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가.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마야라고 부르자. 어릴 적 보았던 동화 속에서 소녀의 이름은 마야였거든. 그래서..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꼭 이름을."

  충범은 더  말을 이을 수 없다. 아빠는 아이의 얼굴 위로 눈물을 흘릴라 고개를 돌린다.

  "안녕, 안녕."

  서로 손을 뻗는다. 요람을 나온 간호사의 손 위엔  작지 않은 한 아이가 있었다. 부모는 아이를 건네받는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생명의 무게를 느낀다. 연미는 자신이 그동안 바느질한 저고리가 턱 없이 작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짓는다. 능숙히 아이를 품에 안고서 연미는 속삭였다.

  "안녕, 나의 사랑스러운 마야."

  그 순간 마야의 입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추운 겨울날 잠들어 있던 마음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부모에게 더 가까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요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엄마를 처음 안았을 때에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당신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렇게 해서 부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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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저작권위원회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엄지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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