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이 나를 닮아간다

by 사랑주니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괜찮아?"

"응."


아이와 나눈 대화입니다. 근심 가득한 표정을 하고선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군요.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속상한 일, 슬픈 일을 쫑알쫑알 얘기해 주곤 했지요.


"엄마는 화풀이 항아리 같아. 그 항아리는 나한테만 있어. 친구들한테는 열리지 않거든. 엄마한테 말하고 나면 풀려."


그 말이 고마워, 다행이었어요.


"그래, 그래. 엄마는 영원한 화풀이 항아리다. 무슨 일 생기면 엄마한테 와."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는 점점 말 수가 줄어들더군요.


"괜찮아. 묻지 마."


금방이라도 눈물 터질 듯한 얼굴로 집에 들어오며 하는 말입니다.


그럴 때, 당신이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회사는 어때? 다닐 만 해?"

"좋아요. 잘 다니고 있어요."

"일하느라 힘들지 않아?"

"힘들긴, 알잖아요 나 일 잘해요."


20대 직장 다닐 무렵, 엄마는 늘 같은 말을 물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명절인데 어땠어? 음식 하기 힘들었지?"

"다 도와주셔서 금방 했어요."

"친척분들 앞에서 어렵지 않았어?"

"알잖아. 나, 싹싹하게 잘해."


결혼 후, 엄마는 제게 질문만 했습니다.


"애 키우기 힘들지 않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어요. 아이가 건강한데 힘들긴요."

"밤에 깨서 울지? 그건 안 힘들어?"

"가끔 깨는데 괜찮아요. 알잖아. 나 애 키우는 것도 잘해."


엄마에게 언제나 저는 괜찮은 아이,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사실, 첫째 아이가 밤에 1시간마다 깼고, 저는 밤이면 좀비가 될 때였어요. 아이가 불면증인 나를 닮은 것만 같아 미안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엄마 미역국 먹고 싶어요."

"냉국, 엄마가 해준 거 생각나요."


엄마 음식이 유난히 생각나는 날엔 가끔 투정을 부린 적도 있어요. 그때도 저는 늘 웃는 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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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딸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나와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군요. 그저 괜찮다고만 해요.


'무슨 일이지? 왜 입을 꾹 다물까? 내게 얘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 들지 않나요?

아이 얼굴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알 것만 같을 때가 있어요. 궁금해서 더 물어보고 싶지만 끝내 삼켜버리고 말죠. 점점 가슴이 저릿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괜찮다.'라는 말이 가끔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걸요. 표정과 미세한 움직에서 괜찮지 않다는 걸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제, 다시 질문합니다.


당신은 엄마에게 어떤 딸, 어떤 아들이었나요?

엄마는 우리들에게서 어떤 말을 듣고 싶으셨을까요?


"엄마, 요즘 좀 힘들긴 하네.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다."


당신은 엄마에게 뭐라고 말할 건가요?




16년 전,

엄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싶은 날입니다.


'괜찮아.'라는 말 뒤에 숨은 마음, 우리 모두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말, 오늘은 그 말 꺼내어 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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