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에 삼켜질 것 같아도.
제주 바다에 가면
바닷가 바로 옆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물을 만날 수 있다.
그 물을 제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단물'이라고 불러왔다.
짠물이 넘실대는 해안에서,
어떻게 민물이 올라오는 걸까?
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서인지,
단물을 보면 어릴 적 그곳에서
뛰놀던 기억이 먼저 쏟아진다.
파도는 쉼 없이 몰아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솟아오르는 물길.
그 모습이 꼭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화산섬이다.
구멍 많은 현무암 지층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그 빗물이 지하수로 흘러
바다 가까운 곳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제주의 단물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기적이라기 보다 오랜 시간 땅속에서
흘러온 깊은 흐름의 결과다.
밀물이 몰려들어 바다에 잠시 덮여도,
겉에서 보면 파도에 휩쓸린 것 같아도
그 물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속에서는 묵묵히 제 길을 간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단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단물이 신비하다고 말하지만,
오랜 시간 지하에서 이어져 온 흐름이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단물처럼, 내게도 흔들림 속에서
살아남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우리 안에도 이런 물길이 있다는 것을.
한 번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다시 찾아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힘.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바닷물에 삼켜진 것 같은 날을 맞는다.
갑자기 휘청이는 일,
예상치 못한 상실, 마음의 좌절감,
혹은 이유 없이 밀려오는 무기력.
그런 순간에는 나를 지탱해주던 힘이
다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정상적인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벅찰 만큼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단물처럼 나를 회복시키는 힘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파도에 잠시 가려졌을 뿐,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회복력이라는 말을
다시 나로 돌아오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나를 끌어올려줘서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상처가 아물기를
억지로 버티는 것도 아니다.
내 안의 물길을 다시 찾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단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다시 붙잡으면, 다시 선다.
제주의 단물은
파도에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흔들리고,
잠겨버린 것 같아도
깊은 곳에는 사라지지 않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상처의 흔적을 밀어내고,
다시 일상을 걷게 하고,
다시 나답게 만드는 물길이다.
바다는 오늘도 여전히
밀려오고 밀려가겠지만 그 아래의 단물은
오늘도 솟아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는.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고.
바쁘게 살다 보면 휩쓸릴 때도 있고,
무너지는 듯한 순간도 찾아오지만
우리 안의 단물은 남아있다.
오늘도 그 물길을 믿으며 살아간다.
흔들리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깊이 가라앉을 때가 와도
우리는 결국 다시 우리 자리로 돌아온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힘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