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참, 엄마 같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안다

by 사랑주니


아침에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운동을 다녀오고 책상에 앉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끊기지 않고 글이 흘렀다.

어디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이

잡아 끌리듯 올라왔다.


눈물이 났다.

생각지도 않던

오래전의 나까지 따라 나왔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나탈리 골드버그는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으라.

조절하지 말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라고 말한다.


그 순간

그녀가 내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멈추지 마. 계속 써!

지금 그 감정을 놓치지 마."


휴지를 찾을 여유도 없이

키보드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탁탁탁 소리가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듯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올라왔다.


한참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보니 30분.


'몰입이 이런 시간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글자 수를 보니 이미 2천 자를 넘었다.

바로 올리기엔 길다 싶었다.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

감정의 파편들이

군데군데 튀어나온 채였다.


숨도 안 쉬고 써버린 글 같아서

거칠고 날이 서 있었다.


감정은 충분히 끌어냈지만

발행 버튼 앞에서는 손이 굳었다.


'이번엔 퇴고를 제대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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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를 시작하자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읽을수록 다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잘 썼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를 붙잡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미련이 문장 사이에 들러붙어 있었다.


문장 한 줄 한줄에 마음은 가득하나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움만 느껴졌다.


문단 하나하나에 연연했다.

단어 몇 개를 바꿔 보려 애썼다.


그랬다.

자기 검열의 늪에 들어가 버렸다.


과몰입된 감정만 가득하고

정작 독자와 나누는 이야기는 없었다.


1시간, 2시간을 붙들다 결국 멈췄다.

키보드에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평소 두 번째 글을 쓰는 시간대가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잠깐 나른해도 하고,

미라클 주니에서 루틴 체크도 하고,

다른 글을 몇 개 정리하고,

스레드에 짧은 글 10개를 올렸다.


그런데도

아침의 그 글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4시가 넘었다.


70%쯤 써둔 다른 글을 열었다가

그것마저 손에 닿지 않아 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 이 글이 나왔다.


아, 시원하다.

쓰고 나니 숨이 트였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내어놓으니 낫다.

잘했다.


아침의 폭발 같은 글은

끝내 다시 열지 못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묵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오늘도 글 쓰며 흔들렸고,

또 글 쓰며 마음을 달랬다.


글이란 참,

나를 나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 같다.

오늘은 어쩐지 엄마 같다.




쓰고도 다시 들어가지 못한 글이 있나요?


쓰다 멈춘 자리에서

어떤 마음이 올랐는지,

그 순간의 당신에게

살짝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글에게 서운함이 있다면 그 마음을

다시 글로 내어 주면 더 좋습니다.


당신의 그 마음을 살짝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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