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아니었어요.
덕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련이 아니었어요.
시련은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해줍니다.
때문이 아니고, 덕분이에요.
지나고 나서야 압니다.
지나가는 과정에서는 절망적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고,
아무것도 더 해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멈춘 날도 많았을 거예요.
그땐 몰랐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나는 여기서 끝이라고 여겼던 시간들.
그때도
우리는 성장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시련 한가운데서는
그게 지나가는 과정인지,
영원히 머무를 자리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
회사를 나올 때 저도 그랬습니다.
세상은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걸까.
남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잘하는 것 같다가도
왜 꼭 멈추게 만드는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내 의지의 부족일까.
난 끈기가 없는 사람일까.
아니야.
나는 잘했는데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은 거야.
그 사람이 그랬고,
그들이 그랬어.
나를 비관했고,
타인을 탓했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어요.
끝없이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생각 하나가 들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면서
나만 계속 무너진다면,
그럼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자.
그 사람이
남들과 다른 고군분투와 충성으로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이상으로 하자.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회사, 가족, 타인.
잠시 내려놓자.
버려도 좋다.
오로지 나에 의한,
나의 삶을 찾자.
왜 그런 결심이 나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분노가 강해지면
사람은 그렇게 되기도 하나 봅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미라클 모닝이었어요.
그 시간을 건너며
제가 직접 체감한 건 단 하나.
그 모든 시련은 성장이었다는 것.
하루, 또 하루.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몸과 마음은 분명
다른 쪽을 향해 가고 있었지요.
그 모든 시간은
나를 괴롭히기 위한 시련이 아니라
나를 다른 곳으로 밀어내기 위한
바람이었어요.
바람을 맞으며 걷는 동안은
춥고, 거칠고, 힘들었어요.
그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바람은 잦아들고
햇살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미라클 모닝을 하기 전의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어요.
회사를 나오면
초라한 중년 여성일 거라 여겼던 제가
종이책을 낸 작가가 되었고,
코칭을 하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삶입니다.
이렇게 성장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시련은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었다고.
저를 힘들게 했던 그분 덕분에,
저를 가만두지 않던 세상 덕분에
지금은 감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보다 더한 역경을 마주하고도
계속 나아가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나는 엄살이구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다시 좌절하지는 않아요.
다른 이들의 극복은
나를 멈추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식어버렸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견디는 중이라면,
아직 의미를 찾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게 정상입니다.
시련은 늘
지나간 말이 됩니다.
오늘도 한 발을 내딛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멈춘 게 아닙니다.
시련은 끝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의미는 남습니다.
우리도 나아갑니다.
오늘도 딱 한 발을 더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