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의 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제가 마음속에 정해둔 시간들이 있어요.
3년 후, 5년 후, 그리고 10년 후.
그 마지막이 제가 예순이 되는 해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숫자가 자꾸 또렷해졌어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시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예순.
그때쯤이면 저는
'사랑주니 정선희'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 번쯤은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나 그 사람 알아. 글 쓰는 사람 있잖아."
"그 코칭으로 사랑 나누는 사람."
이 정도면 충분해요.
대단한 성공이 아니어도 좋고,
모두가 아는 이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다만, 분명히 '나'로 기억되는
이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제가 오래 좋아해 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송해 선생님이요.
'전국 노래자랑'으로
누구나 아는 국민 MC가 되셨죠.
그 프로그램을 시작한 건
예순을 넘긴 나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이름을 들어도
떠오르는 대표작이 없던 시절이었고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 생각이 쉽게 지나가지 않았어요.
"아, 나도 예순부터 시작해도 되는구나.
그 이전의 시간은
그저 준비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생각이 더 선명해졌을까.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
"언젠가"라는 말로는
나를 속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시간은 분명히 흘렀고,
충분히 많은 일을 겪었어요.
이제는 무엇을 버텼는지 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진 시점에 와 있었거든요.
지금부터의 10년은
저에게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저를 갈고닦는 시간이에요.
제 목소리를 다듬고,
제 말의 결을 만들고,
제가 쓰는 문장에
제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시간.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고, 기쁨도 실패도
모두 제 이름 아래
차곡차곡 쌓아두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순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제 글이나 말을 보고
이렇게 말해준다면 좋겠어요.
"이건 사랑주니가 쓴 거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늦지 않았다는 믿음이
저를 계속 앞으로 밀어줍니다.
나이 듦은 제게 핑계가 아니라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어요.
제가 살아온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10년은
저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걸
이상하리만치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망한다.'라는 말보다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예순의 사랑주니 정선희는
우연히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라,
오래 준비해 온 이름이 될 거라고.
"그때 참 잘 버텼고, 잘 쌓아두었구나."
지금 이 시간들이 훗날 돌아봤을 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오늘도,
하루치의 제 이름을 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