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우리, 같이 자라는 중

by 사랑주니

부모가 된다는 건

매일 조금씩 나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내가 내놓은 말이 도리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자란다.


이제부터 조금씩.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그건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아직 서툴고, 판단은 느리고,

감정은 먼저 튀어나온다.

미숙하다. 그래서 실수한다.

같은 말을 또 하게 만들고,

그럴수록 부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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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문득 멈춰 서게 된다.

어른인 나는 과연 어떤가.


나도 여전히 서툴다.

말을 삼켜야 할 순간에 던진다.

기다려야 할 때 조급해지고,

사랑한다면서 내 기준을 먼저 들이민다.


어른이 되었지만 완성된 적은 없었다.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우린 둘 다 익숙하지 않다.

미숙한 내가, 서툰 아이를 만나

부모와 자식이 되었다.


이 조합은 어쩌면 참 신기하다.


부모는 뭐든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를 통해 처음 겪는 일 투성이다.


아이의 성격도, 반응도, 아픔도 다 새롭다.

부모 노릇은 하루하루,

아이 옆에서 지금의 나로부터 배운다.


"아이를 잘 키워서 혼자서 다 하게 해야죠."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맞는 말이다.


아이에게 힘이 생기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면

부모의 손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질 것이다.


마음속에서 물음이 튀어나온다.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모습일까.


아이가 부모 없이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론 힘들 땐 기대도 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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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해결사가 아니다.

늘 정답을 아는 사람도 아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아이가 넘어졌을 때 말해주는 사람.

잘못했을 때도 떠나지 않고

옆에 남아 있는 사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능숙한 부모가 아니다.

계속 함께하려는 어른일테다.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보다,

무너질 때 함께 하는 사람.

늘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


결과보다 관계, 정답보다 시선.

그런 어른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단단한 힘이 될까.


나는 이제부터 조금씩 하려고 한다.

잘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잘 기다려주기로 한다.


아이의 서툶 앞에서 찡그리지 않고

내 서툶도 감추지 않으면서.


부모는 아이를 완성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같이 자라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서툰 채로,

그래도 함께.


혹시 지금 아이 앞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고 있다면,

우리 함께 말해보자.


이제부터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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