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하면 따라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다. '바쁘다. 엄청 바쁘다.'이다. 20대에는 월말 마감하는 회사를 다녔고, 30대 이후 이직한 회사는 월초 마감이었다. 월말부터 월초까지 쉴 새 없이 일이 몰려 있었다. 대부분 한 해를 마감하느라 다들 정신없겠지만, 나는 유독 더 그랬던 것 같다.
11월부터는 다음 해 거래처 재계약이 시작되고, 그해 남은 일들도 정리해야 했다. 숨 쉴 틈조차 없었다. 자정 넘기는 퇴근은 일상이었다. 특히 신규 거래처가 생기면 모든 걸 새로 세팅해야 했기에 업무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나는 제주에 살았고, 그럴 때면 육지로 출장이 잦았다.
2년 전 12월에는 중순부터 출장이 시작됐다. 새해 첫날을 출장지에서 맞았다. 1년 전 12월엔 매일 외근이 이어졌고, 1월 1일 새벽부터 외부 일정으로 그 해를 시작했다. 연말은 마무리하고, 새해는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시기라고들 하는데 내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늘 야근이었고, 12월 31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만 야근이다. 미안하다." 같은 팀 후배에게 말하면, "괜찮아요. 얼른 마무리하고 퇴근하시죠."라고 말하던 그 녀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그때는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돌아보면 회사 일정에 끌려다니기 바빴다. 일의 구멍을 메우느라 늘 쫓기듯 움직였다. 나는 없었다. 올해는 어땠는지, 내년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짐할 틈도 없었다. 그런 건 사치였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남편과 아이들이 만든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겨줬다. 잠깐, 그 빛의 반짝임을 바라보다 보면 일상이 잠시,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딱 그 찰나. 아이들 선물을 몰래 준비하고 자정이 지나 살그머니 트리 아래 놔둘 때면 우리가 아이들의 1년짜리 소원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12월 31일만큼은 어떻게든 일찍 들어가려고 했다. 자정 전에는 끝내려 했다. 시계가 11시 59분에서 1분이 넘어가는 그 순간, 가족 모두가 외쳤다. "해피 뉴 이어!" 다음 날은 늦잠. 나는 느지막이 겨우 일어나 비비적거리다 정오쯤 떡국을 끓였다. 그래도 나이는 먹어야 하니까. 싫지만 어쩌겠는가. 새해 일출은 감히. 애초에 내 삶이 아니었다. 그건, 드라마 속 낭만일 뿐.
24년 3월부터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회사를 나왔다. 내가 끌어가는 하루가 시작됐다.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도 마찬가지. 몇 년 동안 잊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 날. 그날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한 해 마무리는 조금 더 일찍 시작됐다.
1월 1일 새벽 4시, 내 생애 처음으로 일출을 보러 집을 나섰다. 물론 가족들은 여전히 꿈나라.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새해 첫해가 뜨기 직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싸던 그 숨 막히는 정적. 햇살이 처음 닿는 순간, 세포 하나하나가 일어서는 것 같았다. 불타오르는 공이 내 가슴에 날아 들어왔다. 차 안으로 돌아오자, 창밖보다 더 뜨거운 것이 내 안에서 흘러 내렸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뒤범벅된 얼굴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훈장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조용했다. 나만 깨어 있었다. 부엌으로 가 탁탁탁, 도마 위에 채소를 썰었다. 떡국을 준비했다. 아침 식사로. 이번엔, 정말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