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이라.
아직은 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이라는 것만 알뿐.
언젠가 나는
양자역학을 공부하게 될 것만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단어가 낯설지 않게 들렸다.
아직은 잘 모르면서도,
관찰자라는 말 앞에서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닿을 것 같은 느낌.
요즘은 그런 감각이 자주 든다.
관찰자라는 단어를
처음 또렷하게 만난 건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은 마음을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자리에서 보라고 말한다.
생각이 나를 흔들 때,
감정이 통제되지 않을 때,
그 모든 것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
그 책을 덮은 뒤부터 그렇게 해보려 했다.
마음이 요동칠 때면
영혼이 몸 밖으로 한 걸음 나와
나를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감정은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게 책에서 말하는 정확한 의미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국은 자기 객관화라는 말로
정리될지도 모르고.
요즘은 그 자기 객관화조차
과연 완전히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내가 보고 있다고 믿는 그 시선조차
또 다른 나의 착각은 아닐까.
나는 정말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완전한 객관화보다는
다른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완전히 객관적인 나를 아는 건 어렵지만,
나를 바라보는 자리를 만드는 연습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연습에
글쓰기가 유독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 마음먹었던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갈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는 분명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써 내려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던 문장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 안다.
아,
이 순간 내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구나.
글은 나를 더 잘 꾸며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방향을
슬쩍 드러내 보인다.
글쓰기는 정답을 찾는 도구 보다는
관찰의 자리로 나를 데려다주는
하나의 방법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객관적인 내가 되겠다는 욕심은
이제 조금 내려놓는다.
대신, 흔들릴 때마다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다시 찾아보려 한다.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써 내려가는 일.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