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 속에서 숨을 쉰다, 난 여기 있다

by 사랑주니


삶은 얼마나 가치 있는 걸까. 그 귀함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살까. 숨을 쉬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주변에 있는 공기가 당연하다 여기는 일상이다.


어제의 일은 내일로 미루고, 어제의 미움은 오늘을 넘어 내일까지 끌고 간다. 하루는 별일 없고, 시간은 끝없이 주어질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늙어 죽겠지, 막연한 생각 하나로 오늘을 넘긴다. 뉴스 속 사건사고는 안타까운 남의 이야기. 오늘의 보통이 지긋지긋해 약속을 다음으로 미룬다. 내일은 늘 있으니까.



생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말뿐이다. 나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실제로는 거의 믿지 않으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렇게, 모른 척하며 산다.



집안에 갑작스러운 장례가 있었다. 정말 갑자기였다. 예상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었다. 꿈에서도, 아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우리는 모두 멈췄다. 아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그 자리를 배회했다. 갈 곳 없는 눈동자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다 초점 없이 내려앉았다.



그중 나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가족이나 나와는 피가 섞이지 않아 그랬으려나. 그나마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미안하면서도, 미안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있을 때 문득 얼굴이 떠오르면 나는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삶이 허무하고, 생이 의미 없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럴 때 다른 글을 썼다.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 미라클 주니 방에 들어가 사람들이 나누는 온기를 가만히 받았다. 그러다 보면 그 속을 빠져나오는 문이 열리고 나는 다시 현실의 자리, 내가 살아내야 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시작하면 “어서 오세요.” 밝게 웃으며 맞아주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렸다. 점점 어떤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럴수록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도망치는 건지, 가까이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이 너무 무섭다.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아무리 조심해도 빼앗길 수도 있다. 이게 현실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리 원해도 되돌릴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견디기 어렵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잦아질수록 속도는 빨라졌을 것이다. 숨이 헐떡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얼마 달리지도 못했는데 심장이 버겁다며 “쿵쿵쿵” 크게 울려댔다. 그 순간, “후후후” 거친 숨을 내쉬며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었다.



숨을 더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조금 더 천천히 호흡한다. 괜히 태연한 척, 달리다 지친 것뿐인 척 아무 일 없다는 얼굴을 해본다. 심장은 점점 잦아들고 소리도 낮아진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숨을 쉰다. 겨울바람이 차갑다. 그리고 시원하다. 가슴 안으로 감사가 밀려 들어온다.



아이러니하다. 저곳에서는 아직도 이게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있을 텐데 이쪽의 나는 이 찰나에 감사하고 있다니.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내게 닥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읽고, 듣고, 안다고 말해도 가슴으로 겪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이제야 삶이 얼마나 귀한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순간이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숨 쉬는 내 심장이, 바람이,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 집과 아이들이 고맙다.



내쉬는 숨에 감격하고 들어오는 삶에 울컥한다. 버겁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날도 있겠지만 그건 어쩌면 다음을 지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2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제삿날이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문을 열고 웃으며 다가오던 사람은 이제 없다. 뻥 뚫린 자리에 시린 바람이 스며들면 뜨거운 내 마음으로 조금은 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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