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산행은 다르다.
달리기는 혼자 허공을 향해 가른다.
산행은 나를 품어주는 자연으로 들어간다.
제주시 별도봉은
오름이라는 느낌보다는
뒷동산 같은 느낌이다.
다른 오름들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
제주에 살면서 올랐던 오름이라고 하면
부끄러워 나열할 수가 없기에 그렇다.
학창 시절 소풍으로 친구들과 호기롭게
올랐던 몇 군데가 전부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데도
별도봉은 작년에야 처음 올랐다.
그때는 헉헉.
허벅지가 감당이 안 된다며
속으로 몇 번이나 투덜거렸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뒤였는데도 말이다.
그날 알았다.
달릴 때 쓰는 다리와
산을 오를 때 쓰는 다리는
전혀 다르다는 걸.
한라산을 목표로 삼았기에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별도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다람쥐처럼
가볍게 오르는 어르신들을 보며
괜히 위축됐다가,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더 자주 올라갔다.
"별도봉쯤은
노래 부르며 오를 수 있을 정도는 되자."
아무도 듣지 않는 허공을 향해
혼자 중얼거리며 다짐을 했더랬다.
몇 번 오르다 보니
길이 익숙해졌고,
어디쯤에서 숨을 고를지도 알게 됐다.
어느 날은
쉬지 않고 한 번에 올랐다.
공기가 유난히 맑았던 아침이었다.
그날,
백록담을 향한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졌었다.
작년 6월,
한라산을 다녀온 뒤로는
별도봉에 거의 오르지 않았다.
달리기가 부족한 것 같아
달리기에 더 시간을 썼고,
가을부터는
무릎을 조금 더 조심하게 됐다.
조금 달리고, 많이 걷고.
운동 시간은 비슷했지만
강도는 확실히 낮아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 별도봉.
사흘 연속이다.
중간에 멈췄다.
헉헉.
콧물까지 나왔다.
콧물과 다리가 나를 놀려댔다.
몸은 요 며칠을 다 알고 있다는 듯했다.
잠깐의 느슨함은 이렇게 바로 드러난다.
속이 상할 즈음 정상이다.
새벽에 만나는 야경.
한쪽은 한라산, 반대쪽은 바다다.
해가 조금 늦게 일어나 주는 덕분에
6시에도 이런 풍경을 만난다.
하늘은 아직 잠들어 있지만
세상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바다는 먼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오십 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이 새벽에 무얼 하며 보냈을까.
꼭 새벽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나를 만나는 시간이면 된다.
이곳에서 이 공기를 만나면 될 터이다.
다음에 올 때는 한 번에 오를 수 있겠지.
그러면 또 그만큼 몸이 기억해 줄테지.
그래.
그러면 된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이 순간, 내가 깨어 있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