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골목마다〔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34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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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눈이 용이 얼굴을 올려다본다. 무섭게 부푼 배 때문인지 여자의 두 어깨는 가날프고 흙묻일 때 찾을 수 없었던 처녀성(處女性)을 느끼게 한다.

중략...

임이네는 차분하게 말을 했다. 짐승같이 비명을 지르고 이빨을 드리내어 바드득 소리를 내던 조금 전의 처참했던 얼굴은 고통 뒤의 평화스런 휴식으로 돌아와 있었다. 슬기롭고 신비하기조차 했다. 땀에 흠씬 젖어서 아름다웠다. 그러더니 임이네는 잠이 드는가 싶었다.


<박경리 토지. 4편 4장 골목마다 사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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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으며 임이네를 안았다. 임이네는 떠밀었다. 무서운 힘이었다. 용이는 나자빠지면서 무엇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천지가 멎어버린 것 같은, 시간도 멎어버린 것 같은 정적이, 그리고 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방 안에 퍼지고 울렸다. 두 주먹을 모은 채 꼿꼿하게 선 고추에서 오줌이 치솟았다. 임이네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일찍이 용이는 그와 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임이네한테서 본 일이 없다.


<박경리 토지. 4편 4장 골목마다 사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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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참판댁에서는 김서방이 죽은 뒤 돌이와 봉순네는 동시에 발병하여 죽었다. 그 다음의 희생자는 윤씨부인이었다. 길상은 밤길을 타고 읍내까지 문의원을 데리러 갔다. 문의원이 와도 이미 허사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길상은 앉아서 부인의 죽음을 기다릴 수 없었고 수동이도 동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읍내에 가서 길상이 들은 소식은 문의원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말고 출타한 곳, 그러니까 우관스님을 찾아 절에 갔다는 것은 착오였고 진주에 갔다가 그곳에서 변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돌아온 길상이 그 사실을 알렸을 때 윤씨부인은 힘없는 팔을 들어 자기 가슴을 두 번인가 두드렸다. 그리고 숨을 거둘 때는 손목을 잡고 길상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르는 동안 뒤채에 있는 서울 식구들은 얼씬거리지 않았다. 다만 준구만은 윤씨부인이 앓는다는 말을 듣고 두 번인가 안채에 나타났다. 마침내 운명은 조준구를 향해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박경리 토지. 4편 5장 생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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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4장에서 장면은

출산의 고통을 넘어선다.

사람의 값을 재는 언어가 튀어나온다.


여자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

몸을 쓰고 있는데,

문장은 그 몸 위에 오래된 기준을 얹는다.


임이네는 그 기준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차분하게 말한다.

조금 전까지 짐승같이 울부짖던 얼굴이

“고통 뒤의 평화스런 휴식”으로 돌아온다.


슬기롭고 신비하다고까지 묘사되지만,

그 신비는 감상으로 번지지 않는다.

땀에 흠씬 젖은 아름다움은

‘견딘 뒤의 얼굴’에 붙는 이름이다.



출산은 곧바로

“무엇이 쏟아져나오는 것”으로 처리된다.


천지가 멎고 시간이 멎는 정적 뒤에

아이의 울음이 방 안에 퍼진다.

이때 가장 날것의 사실이 등장한다.


임이네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오른다.

승리라는 단어가 정확하다.


이건 생존의 판정이다.

임이네는 살아냈고, 아이도 울었다.

그게 전부다.

그 전부가 임이네의 삶을 결정한다.


5장에서는

더 잔인하게 건조하다.


김서방이 죽고,

돌이와 봉순네가 동시에 발병해 죽고,

그 다음이 윤씨부인이다.


죽음이 사건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순서로, 목록으로 지나간다.


길상은 문의원을 데리러 갔다.

이미 허사일 걸 알면서도

앉아 기다릴 수 없어서.


여기서 비극은 ‘절망’이 아니다.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이 더 빨리 무너지는 세계다.


길상은 달려가고, 돌아와 소식을 전하고,

윤씨부인은 힘없는 팔로

가슴을 두 번 두드린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이다.

누가 울었다는 말은 없다.


뒤채의 서울 식구들은 얼씬거리지 않는다.

소설은 그를 나무라기보다,

그런 방식으로만 참여하는 인간의 형태를

기록한다.



『토지』에서 인간을 무너뜨리는 건

칼 같은 사건이 아니라 이런 시간이다.

비극을 처리하는 방식이 사람을 닳게 한다.


이 세 장면이 함께 놓일 때,

출산과 죽음은 반대편에 서지 않는다.

둘 다 같은 톤으로,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어떤 날은 아이가 울고,

어떤 날은 문의원이 죽고,

어떤 날은 부인이 가슴을 두 번 두드린다.


모든 날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은 감정 ‘표현’하기보다 ‘정리’한다.


이 장면들이 너무 현실처럼 다가온다.

섬뜩하다.


우리는 비극을 커다란 사건으로

기억하고 싶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비극이 종종 이렇게 온다.


조용히, 차분하게,

다음 일을 하라고 재촉하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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