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군병을 보내? 죽은 나무에 꽃피기를 바라지. 유약한 상감, 파벌싸움에 영일이 없는 정상배들! 한치 앞이 눈에 베야 말이지. 하긴 나라 안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서, 대궐 안도 지키지 못하는… 결국 사포대를 만들어 그곳 백성 스스로가 힘을 뭉쳐 대항할 수밖에 없겠지. 하나 군자금이 문제 아닌가.’
<박경리 토지. 4편 8장 귀향>
이동진은 서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봉순이가 울고 수동이, 길상이 또 운다. 서희는 울지 않았다. 흰 베옷, 저고리의 가날픈 두 어깨에 흐르는 선은 기질의 강인함을, 또 쓰러지려는 최 참판댁, 그 영옥의 마지막 상징인 듯 이동진 눈에 따갑게 비치었다.
‘비록 여식이나 그 아비의 딸이요, 그 할머니의 손녀로구나. 앞으로 국운에 따라 이 아이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박경리 토지. 4편 8장 귀향>
4편 8장에서
죽은 나무에 꽃피기를 바란다는 말은,
나라가 이미 제 몸을 지키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나온다.
유약한 상감,
파벌싸움에 영일이 없는 정상배들.
비난의 방향은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책임이 증발한 자리로 향한다.
나라 안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서
대궐 안을 지키는 일은 더 말이 없다.
결론은 아래로 내려온다.
결국 사포대를 만들어
“그곳 백성 스스로가 힘을 뭉쳐”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백성이 떠안는다.
곧장 붙는 말이 군자금이다.
의지 보다는 비용이,
명분이 아닌 돈이 먼저 등장한다.
현실은 그렇게 계획을 꺾는다.
이동진의 귀향 장면에서
이동진은 서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봉순이와 수동이와 길상이 운다.
서희는 울지 않는다.
울음의 부재가 강함으로
쉽게 번역되지는 않지만,
작가는 가날픈 어깨에 흐르는 선에서
“기질의 강인함”을 본다.
더 중요한 것을 덧붙인다.
쓰러지려는 최참판댁,
그 영옥의 마지막 상징.
한 집안의 마지막이 한 아이에 걸려 있다.
‘비록 여식이나 그 아비의 딸이요,
그 할머니의 손녀로구나.’
이 말은 칭찬이면서 동시에 예고다.
‘앞으로 국운에 따라
이 아이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서희의 미래는
성격이나 노력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나라의 기울기에 따라
한 아이의 삶이 흔들릴 거라는 문장.
『토지』가 냉정한 건,
이 예고를 비극으로 꾸미지 않는 데 있다.
다만 그렇게 될 거라고,
너무 담담하게 말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