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죽음〔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39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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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없구마. 벌써 갔는데, 고개는 와 젖소. 안 갔일 기라 그 말이오?”

“……”

“갔소, 갔다 말이오. 단념하는 기이 좋을 기구마.”

시적시적 말했으나 윤보의 작은 눈은 다시없이 슬프게 보인다.

“아이구, 아이고, 아이고오 아이고! 불쌍한 울 엄니.”

머리를 푼 안산댁의 곡소리는 마치 바위틈에 고였다가 울컥 울컥 쏟아지는 물소리 같다. 복스럽게 도토릅한 콧망울에 연신 눈물이 쏟아져서 흘러내린다.

‘세상에 별놈의 죽음이 다 있지마는 굶어 죽는 것같이 애참하까.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사꾼이 더 많이 굶어죽는다. 와 그러꼬? 풀 한 포기 뽑아본 일이 없는 놈들이사 어디 굶어 죽던가? 와 그러꼬?’

최참판댁 곳간에 쌓인 볏섬을 눈앞에 그려본다.

밖에 나온 윤보는,

“울지만 말고 저 영감탱구나 돌보소. 송장 들 치울라 카믄 그것도 큰일 아니오. 여기 이거 보리도 아니고 쌀이오. 최참판댁에서 어짓밤 나온 기니까. 이럴 줄 알았이믄 새벽부터 오는 긴데 굶은 사람이 한둘이라야제. 에이! 주변머리 없는 영감탱구. 배가 고프믄 기어나와 볼 일이지


<박경리 토지. 4편 14장 산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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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14장에서

죽음은 확인이 아니라 통보다.

남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애도보다 처리다.

‘단념’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굶어 죽는 것같이 애참하까.’

윤보의 속말은 애도의 언어가 아니다.

질문이 반복된다.

와 그러꼬? 농사꾼이 더 많이 굶어죽는다.

풀 한 포기 뽑아본 일이 없는 놈들이사

어디 굶어 죽던가.


여기서 분노는 개인을 겨누기보다

방향을 잃은 채 허공을 돈다.

누가 가져가고 누가 남겼는지 알면서도,

말은 ‘놈들’이라는 흐린 대상에 걸린다.

그 흐림이 더 현실적이다.


굶어 죽는 일 앞에서는

원인이 너무 많은데,

지금 필요한 건 당장 입에 들어갈

한 숟가락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온 윤보는 말한다.

울지만 말고 영감탱을 돌보라고.

송장 치우는 일도 큰일이라고.


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미리 와야 했다는 말까지 붙는다.

애도의 자리에서조차 사람은

다음 배고픔을 먼저 센다.


씁쓸함이 남는다.

울음은 넘치는데, 살아 있는 쪽은

끝내 ‘단념’과 ‘쌀’로 정리된다.




어느새 3권을 완독했다.


챌린지로 연결되고,

함께 읽는다는 사실이

책을 안쪽으로 시나브로 스며들게 한다.


막연히 어렵다고 멀게 느껴지던 책이

이제는 가까이 와 있다.


이제는 이 책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아직도 어려운 대목이 나오지만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더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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