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폭풍 속으로〔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41일차

대하소설 완독 프로젝트 시즌1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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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러나 우리가 중국을 의지하고 살아온 역사가 긴 데…… 병자호란이 있어서 역사에 없는 항복을 하기는 했으나 그때는 아주 상스러운 여진족이었고, 그 싸움의 명분이라는 것도 우리 강산을 먹자는 게 아니라 명나라를 섬긴다는 데 있었던 게야. 우리네 또한 명나라와의 오랜 우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대적이었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가 와서 우리를 도와준 것을 잊어서는 안 되었던 게야. 싸움이 끝난 뒤에야 말굽을 돌렸던 게고, 어디 왜구 놈들 같았을라구. 심나라 쥐새끼들이 기저귀 하나 차고 무리지어 몰려와서 뭣이든 먹성 좋게 먹어치우려는 그따위 치사스런 짓이야 그 시대의 만족이던 여진도 아니했거든. 그래 청나라 사람들이 조정에 들앉아서 국사를 좌지우지했떤가? 대국은 대국으로서의 풍도가 있는 법이니.”


<박경리 토지. 4편 18장 당랑거철 격이라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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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 나라는 지금 미개하고 우매한 백성으로 치부되어 일본의 희롱을 받고 있는 것인가. 중원의 대국 청나라가, 동방의 예의지국인 조선의 명맥이 바람 앞에 등불이란 말인가. 역사는 진정 정신문화의 종말을 고하고 물질문명의 흥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저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보며 흙을 빚던 사기장의 천심은 가고 나사못을 깎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끼 낀 돌담 곁에 의관을 차려입고 유유히 팔자걸음으로 가던 선비의 풍도는 가고 쩔렁거리는 사벨* 소리와 흙먼지 일으키며 군화 소리가 오고 있다. 물질문명의 시대는 흉기부터 앞장세우며 오고 있는 것이다. 정신문화의 시대는 척박한 가난의 살림을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오고 있는 자는 또 갈 것이요, 가고 있는 자는 다시 올 것이다. 다시 올 때까지 산맥과 지류는 마멸되고 고갈되었어도 들판은 남아 명맥을 이을 것이다. 그리고 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의 사람도 가고 사물만이 남을 것이다. 이 사물에서 역사는 비로소 정확한 자를 들고 인간정신을 측정할 것이며 공명정대한 역학적 기간(基幹)으로 귀납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존엄을 찾게 될 후일 사가(史家)는 이 시대의 승리를 영광의 승리라 하지 않을 것이다. 패배를 치욕의 패배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박경리 토지. 4편 19장 주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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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18장에서

김훈장은

중국을 의지해온 긴 역사를 꺼내며

‘대국의 풍도’를 말한다.


병자호란의 항복도,

임진왜란의 은혜도,

“왜구 놈들 같았을라구”라는 단정도

모두 한 가지를 지키려는 말이다.


믿고 싶다는 마음.

그래도 세상에는 순서와 체면이 있고,

대국은 함부로 그러지 않을 거라는 기대.


그런데 마을 사람의 말은

그 기대를 옆에서 찢어놓는다.



19장에서는

개인의 분노를 넘어 시대를 해부한다.


조선의 명맥이

“바람 앞에 등불”이 되었는지 묻고,

정신문화의 종말과

물질문명의 흥성을 말한다.


흙을 빚던 손 대신 나사못을 깎는 손,

의관을 차려입던 풍도 대신

사벨 소리와 군화 소리.


이 변화는 찬양도 비탄도 아니다.

그냥 온다.

흉기부터 앞장세우며 온다.


마지막의 문장이 더 차갑다.

그때의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이름으로도

자기 존엄을 지키지 못했을 거라는 예고.


바람 앞에서 등불은 흔들리는데,

흔들리는 동안에도 역사는 앞으로 간다.


이야기는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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