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보낸 편지
아들아,
오늘은 복학 준비도 있고,
혼자 생활 시작도 있고,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겹친 날이지.
군대 전역을 하고, 대학교 복학을 위해
오늘 네가 집을 떠났어.
이제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지내게 되겠지.
우리는 제주에 있고,
너는 비행기를 타려고
아침부터 준비해서 공항으로 갔지.
이렇게 한 문장씩 정리해 보니
정말 '시작'이라는 말이
딱 맞는 날이구나 싶다.
아빠와 대화를 하다가
요즘 네 마음이 복잡하다는 얘기를
조금 들었어.
먼저 엄마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나는 이번 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는 지금 안전한 자리에만 있지 않고,
직접 부딪쳐 보면서
배우는 과정을 걷고 있어.
경험이라고 생각해.
아쉽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없더라.
뭐든 네가 가진 것을
내어놓아야 배움의 값을 치르는 거지.
그 값은
마음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어.
이번엔 그 값이 좀 쓰렸겠지.
그래도 나는 네가 대단한 걸
하나 하고 있다고 생각해.
경제적으로도,
생활로도 독립하려는 마음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 마음 자체가 엄마는 고맙고,
응원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번 일을
'내가 안 된다.'로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해.
너는 지금 시작하는 중이고,
그 시작을 걸어가는 중이야.
그래도 지금 상황은 다행이야.
다행이라는 말이 상황을
가볍게 만들진 않지만,
그래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자리는
남았다는 뜻이니까.
다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말은 이거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공부하면서 해보라는 거.
엄마가 아직은 다 알진 못하지만,
책을 읽으며 배운 건 단순했어.
시간은 한 번에 벌어주지 않고,
기다린 사람에게 천천히 쌓인다는 것.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단위로 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오늘은 이동하는 날이니까
도착해서 숨부터 돌리고,
괜찮아지면 연락해.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알지?
어려울 때는 언제든 엄마를 찾아줘.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행복인 엄마란다.
사랑한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