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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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유일한 방법이고, 또한 첩경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이 권유와 충고는 백 번, 천 번, 만 번을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그 세 가지 일깨움을 당신의 영혼에 아로새기고, 가슴 한복판에 화인처럼 찍으십시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날마다, 바보처럼, 미련둥이처럼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러면 문학의 여신은 뜻밖에도 빨리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황홀한 글 감옥. 조정래




잠깐 웃었다.

"바보처럼, 미련둥이처럼."


이 말이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게

해서라기보다는 계속해야 한다는 기준을

단순하게 만들어줘서다.


글을 잘 쓰는 비법이

대단한 기술이 아닌 생활로 내려온다.

답은 명료하게 하나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말은 한 덩어리다.


읽기는 재료를 들여오는 일이고,

생각은 그 재료를

내 몸에 맞게 소화하는 일이고,

쓰기는 소화된 것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니까.


하나가 막히면 나머지도 멈춘다.

문장이 비는 날은

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들어온 것이 없거나,

들어온 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예전엔 쓰기만 늘리려고 했다.

더 길게, 더 자주, 더 그럴듯하게.


그렇게 쓰면 금방 바닥이 나더라.

어떤 날은 키보드 위에 손만 얹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 막연히 잘 쓰는 날을 기다렸다.


몸이 개운하고,

마음이 조용하고,

문장이 술술 나오는 날.


그런 날이 오면 내가 작가인 것 같고,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조바심 났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글은 더 멀어진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못 쓰는 나가 먼저 커져서다.


새벽에 책을 펼치면

마음이 한 번은 멈춘다.

읽는 동안은 적어도

'내가 뭘 써야 하지.'라는

조급함이 잠깐 사라진다.


책 속 문장들이

내 머리를 대신 걸어 다니는 시간이다.

그러다 어떤 줄에서

손가락이 멈출 때가 있다.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고, 다시 읽는다.


그때는 그 문장이 나를 건드린 거다.

생각은 대단한 철학이 아니었다.


'왜 이 문장이 남지?'

하고 묻는 한 줄 메모였다.


쓰기는 그 메모를 붙잡고

조금 더 가보는 일이었다.


잘 쓰려고 쓰는 게 아니다.

오늘의 나를 확인하려고 쓰는 것.


그렇게 쓰다 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가끔은 몇 줄로 끝난다.

그래도 그 몇 줄이

내일의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바보처럼, 미련둥이처럼'

이 마음에 박힌다.


여기엔 태도가 들어 있다.

잘 써지는 날만 쓰는 게 아니다.


안 써지는 날에도 앉는 것.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

그 반복이 결국 사람을 바꾼다.



조정래 작가님이 말한

많이는 숫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매일에 가깝다.

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매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매일 조금이라도 쓰는 일.


그렇게 하다 보면

여신이 오느냐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안에서 글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글을 버리지 않으니까.



글이 멀어졌다고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그럴 땐 잘 쓰는 날을 기다리지 말자.


한 쪽을 읽고,

한 줄을 적고,

한 문단을 써보는 것.


그렇게 오늘을 지나면

내일의 글은 조금 가까워진다.


오늘도 나는 그 세 가지를 한다.

바보처럼, 미련둥이처럼.


그게 내 글의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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