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가요?
눈이 떠지지 않나요?
그럴 때 저는 벌떡 일어납니다.
알람이 울리면 자동 반사 같아요.
공을 던지면 튀어나가는 강아지처럼요.
네.
알람 소리는 튀어 오르는 ‘공’입니다.
띠리리 소리가 들리면,
벌떡, 불 켜기.
미라클 주니 방 열어 굿모닝 인사하기.
이 순서까지는
생각도 없고 멈칫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랬냐고요.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을 때는
비몽사몽, 정말 꿈속에서 허우적거렸죠.
눈을 감은 채로 엉금엉금 했으니까요.
그때라고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매일 밤 울다 잠들었습니다.
‘이제까지 뭐 했을까.’
‘오늘도 왜 그랬을까.’
‘이제 난 안 되는 건가.’
자기혐오까지 심해졌어요.
그런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런 밤을 보냈으니
아침이 개운할 리 없지요.
시작은 했으나,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요.
밤에도 아침에도 혼자였습니다.
외롭고 쓸쓸하더군요.
내 삶의 어둠은 짙어 갔습니다.
그 어둠을 헤쳐 나가기 위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위해
1시간 일찍 일어나는 걸
멈추면 안 되었어요.
그때의 저는
‘버티기’로 새벽을 만들고 있었어요.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견디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버티기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일이니까요.
회사에서도 저는
그렇게 하다가 결국 못 버텼습니다.
혼자서 버티는 건,
끝이 보이기 전에 먼저 마릅니다.
방향을 바꿨습니다.
더 강해지겠다고 이를 악물기보다
함께할 자리를 만들고 싶었지요.
그렇게 ‘미라클 주니’를 열었습니다.
누구라도 같이 “굿모닝”
한 마디를 주고받으면
새벽이 조금 덜 차가워질 것 같았거든요.
제가 겪었던 시간을 나누고 싶었고,
누군가의 새벽이 제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쯤 더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신기하게도,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새벽이 달라졌습니다.
버티던 새벽이 ‘기다려지는 새벽’이 됐어요.
어느 날은 룰루 혼자 흥얼거리기도 했죠.
그게 제게는 가장 낯선 변화였네요.
혼자였다면 저는 아마
미라클 모닝을 1년 이상 못 했을 겁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있었고,
제가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저는 매일 새벽방을 열었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알람이 울리고
미라클 주니 방을 여는 그 첫 순간이에요.
그래서 벌떡은 자동입니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에요.
기다리게 되는 새벽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침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나요?
의지로만 버티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일은 혼자서 힘겹게 하지 말아요.
누군가에게 “굿모닝”
한마디부터 건네보세요.
새벽은 혼자 할 때보다,
함께할 때 오래 갑니다.
당신의 그 마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