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은 참 좋았는데.”
말을 못 들었는가 삼월이는 그냥 멍청하기만 하다.
“저 들판이 누우렁키 익으믄 추석이 오고…… 옛날에는 동네에 전곡도 많이 나갔제. 무섭은 어른이지만 돌아가신 마님이사 그런 데는 후하셨고…… 참말로 꿈 같다. 경매깽이 소리, 징 소리 들은 지가 아득하구나. 이서방은 배수건으로 장구를 걸머지고…… 그런 추석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 목청 좋은 서서방은 실성했고 신명 내던 사람들은 이자 늙어부리고, 그새 사람도 많이 죽었구나. 우리네 신세도 많이 변했고 이자는 추석이 와도 명절 같애야 말이지. 달이 엄치 솟았네.”
<박경리 토지. 4편 13장 밤에 우는 여자>
“옛날은 참 좋았는데.”
이 한마디가,
1권의 추석을 그대로 불러낸다.
그때는 전곡이 나가고, 경매깽이 소리와
징 소리가 마을을 채우고,
배수건으로 장구를 걸머진 사람이 있었다.
축제라기보다 생활의 리듬이었고,
사람들은 그 리듬 속에서 서로를 확인했다.
4권 후반부의 추석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런 추석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
라는 말이 지금의 빈자리를
더 크게 만든다.
목청 좋던 서서방은 실성했고,
신명 내던 사람들은 늙어버리고,
그새 사람도 많이 죽었다.
명절은 오지만
명절 같아야 할 자리가 없다.
달은 똑같이 뜨는데,
달 아래 있는 사람들의 형편이 달라졌다.
이 대목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좋았던 시절’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흥겨웠던 추석은
행복한 장면이 아니었다.
마님이 “후하셨”다는 말처럼,
그때의 질서가
최소한의 순환을 붙들고 있었다.
지금은 그 순환이 끊어진다.
나라가 기울고 최씨네가 흔들리면서,
마을의 리듬부터 사라진다.
이 글귀를 읽으며 이상하게
“내가 나를 추억하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내가 겪지 않은 시절인데도,
잃어버린 감각을 내 안에서 더듬게 된다.
작가는 1권의 시작을 ‘추석’으로 열어두고,
후반부에 다시 ‘추석’으로 닫아놓는다.
한 집안의 몰락과 한 나라의 붕괴를,
사라진 명절의 감각으로 연결한다.
달이 엄치 솟아도,
더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걸 무섭게 확인하게 만드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