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도 도착한다

by 사랑주니


“언니,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세세히 보고 가자. 자칫하면 길을 잃을 거야.”

“그러면 어때. 다시 돌아서 나오면 되지. 길은 돌고 돌아도 도착만 하면 돼. 급할 거 뭐 있니.”



네비가 없던 시절, 둘째 언니와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내가 하던 말이었다.


언니는 길치였고 지도를 잘 볼 줄 몰랐으나 낯선 곳에 찾아가는 걸 좋아했다. 나는 시간에 맞춰 우리가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직성이 풀렸고, 어쩌다가 딴 길로 새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움직이기 전부터 지도를 보고 또 보고, 동선을 시뮬레이션하고 또 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나는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볼 새가 없었다. 가려고 하는 장소, 그곳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오로지 직진이었다. 옆을 보면, 잠시 딴짓하면 길을 놓칠 테니까.


길치인 언니와 다닐 때는 더 긴장했다. 내가 다 찾아야 한다는 의무를 스스로 짊어졌다.





“어? 이 옆에 이런 게 있었어? 아까 올 때는 못 봤는데 이쪽이 더 좋다. 여기 좀만 더 있다 가자.”

“아까 못 봤어? 내가 나갈 때 여기 들렀다 가자고 말했더니 네가 아무 대답이 없더라. 별로인가 했지.”

“아, 그랬어? 못 들었어.”

“너 또 길 찾는다고 아무것도 못 봤구나. 너 이번에도 경주마 했구나.

“하하, 나는 그렇지. 눈을 가리고 한 곳만 보는 거야.”



그랬다. 앞만 보는 경주마였다. 그래도 언니가 옆도 보라고 당겨준 덕분에, 가끔은 먼저 볼 수 있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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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나는 전형적인 계획형 사람이다. 여행 가기 전에 모든 일정을 촘촘히 만들어 놓고 맞추려는 사람이다.


우리가 다른 건, 나는 중간에 변수가 생기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목적지에 꼭 도착해야 했고, 언니는 늦게 가든 잘 못 찾든 그런가 보다 했다는 점이다.


언니는 그곳을 못 가면 근처의 다른 곳을 가면 된다고 했다. 돌고 돌아도 가다 보면 그곳에 가게 된다고 했다. 다만 조금 늦을 뿐이라고. 그럴 때면 나는 계획이 틀어진다고 언니를 타박했다.


어쩌면 나는 여행에서조차 도착하는 목표에만 마음이 쏠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여행지는 내 가슴에 담겼을까.

좋다고 외쳤지만, 정말 내 안에 들어왔을까. 여행지에서도 나는 낯선 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느리게 가면 어떤가. 결국엔 도착하면 되는 것을. 잠시 길을 잃으면 어떤가. 옆길로 샜던 그곳이 나를 붙잡으면 머물다 가면 되는 것을.


그 순간 그곳들을 눈에 넣고 심장에 박으며 갔다면, 내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롭지 않았을까.


급하게 가지 말자. 한 곳만 보며 가지 말자. 가끔은 쉬었다가, 눈도 감았다가, 하늘도 봤다가, 옆 동네에서 잠깐 딴짓도 해보자.


어쩌면 삶이란 그 여유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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