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가 묻은 베틀을 무심히 쓸어보던 기화는 슬며시 베틀에 올라가서 앉아본다. 정답다.
‘지아비는 발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 어머닌 나더러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지아비는 발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 사람이 사는 이치가.’
땅 밑을 흐르는 물줄기처럼 지맥(地脈)의 굼틀거림처럼 기화는 요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누굴 위해 비단옷을 입었나. 내 가장 내 자식 등을 덮기 위한 길쌈이라면 주야장천 긴긴밤도 길지 않을 것을.’
세월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지나간다. 사람들, 흘러가버린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이 지나간다. 무리를 지어가는 얼굴들, 그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박경리 토지 2부 3권 / 4편 7장>
어떤 사람은 새벽에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밤에 하루를 정리한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여도 우리는 저마다 자기 몫을 엮으며 산다.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
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를 운영하며 4개월째 매일 읽고 있다. 지금 7권째다.
이 문장을 읽는 동안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들의 하루에는 맡은 일이 분명했다. 밭을 갈고, 베를 짜고, 오늘 붙들어야 할 일을 붙들며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흐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고를 수 있는 것이 많은 시대다. 하지만 그만큼 하루의 중심도 쉽게 흐려진다. 해야 할 일은 쌓이는데, 정작 나는 오늘 무엇을 짜고 있는지 놓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내 삶의 베틀 앞에 제대로 앉아 있는가.
아침에는 실을 고르고, 낮에는 그것을 엮고, 밤에는 오늘의 결을 만져본다. 이렇게 보낸 하루는 조금씩 내 쪽으로 모인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방향은 달라진다.
오늘도 내 삶의 베틀 앞에 잠깐 앉으면 된다. 길게 붙잡지 않아도 된다. 글 한 줄도 되고, 생각 하나도 된다.
하루의 몫을 내 손으로 짜고 있다는 감각, 그걸 놓치지 않으면 된다.
바깥은 어수선해도 내가 짜는 하루의 무늬만은 조금씩 내 쪽으로 닮아간다.
무엇을 크게 이루지 못한 날에도 내 손으로 한 점 찍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천천히 계속 가자.
그거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