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자존감이 낮아.”
“응? 무슨 말이야?”
“내가 부족해 보여. 못나 보여. 얼굴에서 안 예쁜 부분만 보여.”
“너 예쁘잖아. 엄마라서 하는 말 아니야. 옷 가게에 가도 비율 좋고 피부 화사하다고 하잖아. 학교에서도 예쁘다는 말 듣는다며.”
“나도 내가 괜찮게 생긴 건 알아. 그런 말도 들었어. 그런데 휴대폰을 열면 나보다 예쁜 사람들만 보여. 그럴 때 자존감이 떨어져. 우리 반에도 나보다 예쁜 애가 있어. 피부도 더 하얗고, 키도 더 크고, 비율도 더 좋아.”
“그 사람들을 보면 네 모습이 초라해 보여?”
“응. 여기 봐봐. 이 사람 진짜 예쁘지? 내 얼굴은 이 정도 아니잖아.”
딸은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듣는 아이다. 친척들도 딸을 보면 한마디씩 한다. 예쁘다고.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선생님이 피부 좋다, 예쁘다는 말을 해줬다며 집에 와 신나게 말하곤 했다. 그런 아이가 얼굴 때문에 자존감이 낮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예쁘다는 말을 듣고 사는 아이도 자기 모습 앞에서 이렇게 작아질 수 있구나. 딸이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빛나는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아이들보다 덜 예쁘다는 이유로 딸은 자기 모습을 싫어하고 있었다.
자기 모습이 괜찮아 보이다가도 더 나은 사람을 보면 한없이 부족해진다고 했다. 얼굴은 더 커 보이고, 한쪽에만 쌍꺼풀이 있는 눈은 비대칭으로 보이고, 사진에서 유독 크게 나오는 코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야. 네 코 참 예뻐. 얼굴 중심을 잘 잡아주잖아.”
“콧날이 더 날카로웠으면 좋겠어. 코끝도 더 오뚝하고 짧았으면 좋겠고. 내 코는 좀 뭉툭하잖아.”
기어이 모자란 구석을 찾아낸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딸은 완벽한 얼굴이 있다며 아이돌 사진을 보여줬다. 장원영, 안유진. 그 얼굴들 앞에서 자기 얼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예쁘다는 말과 자존감은 다른 문제였다.
누가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비교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타인이 보기에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는 없나 보다. 이 마음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나를 적당히 괜찮다고 믿고 자랐다. 부모님이 해주던 말이 오래 남아 있다. 우리 딸 주니는 뭘 해도 잘하지. 우리 주니는 예쁘지. 그 말들은 좁은 세계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곳에 더 잘난 사람이 있어도, 나까지 초라해지지는 않았다.
딸은 다르다.
예쁘다는 말을 듣고도 자기 모습을 의심한다. 남과 나란히 세운 뒤에야 자기 얼굴을 본다. 그 순간 칭찬은 힘을 잃는다. 엄마 말은 엄마라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마음을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맞다.
나는 이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괜찮다, 예쁘다, 신경 쓰지 마라. 부모 입장에서 그 말들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딸에게는 하나도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아직은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더 예뻐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보다 낫다고 설득할 수도 없다.
내가 바라는 건 다른 데 있더라.
네가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네 모습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거울 앞에 섰을 때, 모자란 곳부터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마도 앞으로도 예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언젠가 거울 앞의 너를 그대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