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깐 내리고 그친다던 비는 오후까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비는 점점 세졌고, 제주의 바람도 더 거칠어졌다.
유리창은 빗줄기로 가득 찼다. 밖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이미 회색이었고, 저 멀리 수평선 쪽은 안개로 흐려져 있었다. 세상이 조금 떨어져 나간 듯했다.
나는 그 안쪽에 홀로 남은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비바람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되는 안쪽 세상이었다.
오늘은 예보가 틀렸구나. 비는 하루 종일 오려나 보다. 조금 아쉬웠다. 괜한 투정이기도 하다. 제주 날씨가 이런 게 하루 이틀인가. 태어나 살아온 오십 년 동안 자주 보아온 풍경인데도, 유난히 마음이 날씨를 따라 흔들렸다. 뭐에 그리 심통이었을까.
멈췄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비를 바라봤다. 사그라들지 않는 빗물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구나. 오늘 날씨가 그렇구나.
가수 이선희의 노래가 흐르다가 문득 마음을 건드렸다. 잠깐 울컥했다가,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창을 가득 메우던 빗물 사이로 조금씩 빈틈이 보였다. 아까보다는 덜 내리는 것 같았다. 저녁쯤이면 멈추려나 싶었다.
나도 그 사이에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비가 흐르듯, 안에 차 있던 것도 조금은 흘러내린 모양이었다.
삶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새삼 흔들렸다.
늘 좋을 수는 없고, 늘 내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좋은 흐름이 오래가기를 바랐나 보다. 알아차렸으면 되었다.
다시 리듬을 찾으면 된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 잠깐 멈추고, 잠깐 다른 데로 새어도 괜찮다. 그 시간도 내 시간이다. 오늘은 계획에 없던 그림을 그렸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오늘은 똑바로 가기보다 조금 비켜가라는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이런 비가 오면, 또 어떤 쪽으로 감정이 흘러갈지 가만히 따라가봐도 좋겠다.
오늘은 몇 번이나 흔들렸고, 문득 감동하기도 했다. 비가 잦아들 무렵 조금 이해하게 되었고, 한결 차분해졌다. 그러다 작은 답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