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나로 잘 살고 있는가

by 사랑주니


왜 나는 나를 앞에 두려 하면 자꾸 죄책감을 느꼈을까. 나는 꽤 오래, 배려와 나를 뒤로 미루는 태도를 비슷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배려해라.”

“남들이 싫어해.”

“민폐가 되지 말아라.”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의 조건이라고 배웠다. 부모님은 예의를 가르치셨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말들이 내 안에서 조금 다른 뜻으로 굳어졌다는 데 있었다.



상대를 존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는 빠져 있었다. 타인을 살피는 건 익숙했지만, 내 마음을 살피기는 늦어졌다.






어릴 때의 나는 부모님의 그런 질서에 잘 맞지 않는 아이였다. 모난 돌처럼 보였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생각도 많이 했다. 왜 내가 나를 앞에 두면 안 되는지, 왜 내가 힘든데 타인이 편한 것이 더 옳은 일처럼 말해지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고, 내 마음도 중요하다고 느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달라졌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관계를 오래 지나오다 보니 부모님이 하시던 말이 몸에 배었다. 상대를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고, 내 마음은 뒤로 넘겨야 편했다.



그게 성숙이라고 여겼고, 잘 사는 태도라고 믿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자꾸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무난했지만 안쪽에는 내가 흐려져 있었다. 타인을 우선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정작 나는 그 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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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을 때는 이미 오십이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자 허무가 따라왔다. 왜 더 일찍 몰랐을까. 왜 이렇게 오래 나를 챙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늦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깨달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한다. 허무에서 멈출 것인지, 시선을 돌려 나를 다시 찾아갈 것인지. 인생 후반은 그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이 무엇인지 자주 묻는다.

쉬는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 시간이 정말 나를 회복하게 하는지 살펴본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나를 잃지 않는 건 같지 않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간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그래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알게 된다. 십 년이 길어 보여도 지나고 나면 짧다. 그 시간 끝에서 나는 어떤 얼굴로 서 있을지 가끔 떠올린다.



앞으로의 시간은 나를 지운 흔적이 아니라, 나를 찾아온 흔적으로 남았으면 한다. 타인을 배려하되 나를 비워내는 방식은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서 지치는지, 무엇 앞에서 살아나는지 더 자주 들여다보려 한다. 인생 후반은 거창한 결심보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불러오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묻는다.

나는 지금, 나로 잘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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