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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나온 겁나 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파묘’ 관람후기

그동안 감명 깊게 보거나 반대로 보고 나서 너무 티켓값이 아까웠던 영화 관람 후기를 페이스북에 종종 써왔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해 보라고 권유했던 회사 후배도 페이스북 영화 후기를 보고 권했기에 주요 글쓰기 소재로 삼으려던 것이 영화 관람 후기입니다.

지나간 영화도 한 번씩 다시 들춰보겠지만 일단 첫 영화 감상기로 ‘파묘’를 골라봤습니다.

이미 수많은 분이 보셨고 기사와 유튜브에 리뷰가 넘쳐나지만 저만의 매우 주관적인 감상기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영화 줄거리는 스포일러이기도 하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영화 감상기를 핑계로 영화를 보고 느낀 잡다한 생각에 더 가깝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았지만 김고은을 다시 봤습니다


사실 오컬트 영화를 그리 즐겨 보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심령이니 무속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것을 믿지도 않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만든 영화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오컬트 영화는 무서운 맛에 보는데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영화는 많아도 진짜 무서운 영화는 거의 없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니 오히려 궁금해졌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엄청나다는 평이 더 궁금하게도 만들었고요.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74534_36438.html


영화를 보고 나서 세간의 평에 대해 느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1. 진짜 연기가 엄청나다. 특히 김고은을 다시 봤음

2. 이걸 보고 좌파니 반일이니 하면서 급발진할 필요가 있나?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


최민식과 유해진의 연기야 따로 말할 필요 없이 현역 지관과 장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고은은 기존의 사랑스럽던 이미지를 버리고 젊고 섹시하면서도 자기 일(무당)을 할 때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무당을 직접 찾아가 굿을 보고 경문을 외우고 굿의 모든 춤사위와 표정까지 그대로 재현하려 애썼다고 합니다.

이도현 역시 기존 이미지를 넘어서 온몸에 경문을 문신으로 새기고 역시 진짜 무당이 칭찬할 정도로 잘 재현했습니다.


건축과 학생시절 어느 과목에서 교수님이 우리나라 풍수지리에서 집터를 고르는 방법과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풍수지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형과 기후에 맞춰서 경험적으로 형성된 것이 풍수지리라는 것이죠.

남향집을 고르고 남쪽엔 활엽수를 북쪽엔 침엽수를 심으라고 합니다.

이는 여름에는 활엽수가 해를 막아주는 그늘을 드리워 주고 겨울엔 잎이 떨어져 해가 잘 들게 해 주고 북쪽 침엽수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북풍을 막아주기 위해서이죠.

배산임수는 겨울철 주로 부는 북동풍을 막아주는 산이 북쪽에 있는 것이 당연히 좋고, 농경사회였기에 집 앞 논밭 근처에 강이 있으면 물 걱정을 덜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침실의 창을 동쪽에 두라는 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아침에 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위함이라 합니다.

수맥이 흐르는 땅에 집을 짓지 말라는 건 결국 기초를 깊이 할 수 없고 나무로 집을 지었기에 지하수가 건물 아래를 흐르면 건물이 침하되어 하자가 발생하니 돈도 많이 들고 그로 인해 집안에 불화도 생길 수 있으니 나온 이야기라는 겁니다.

방 근처에 대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다는 말도 하는데 밤에 달빛에 비친 댓잎이 칼날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바람이 불면 잎끼리 스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편히 자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풍수지리는 살면서 집 때문에 고생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경험을 통해 굳어진 이론이란 겁니다.


이는 양택이라 하는 집을 고르는 기준이고 음택이라 하는 묫자리 고르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집 택자를 쓰듯 묘지도 고인의 집이라 생각했기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남향, 배산임수, 수맥 등을 따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는 역적에 대한 처벌로 부관참시가 있을 정도로 묘를 중요시했으니 집만큼 까다롭게 골랐겠죠.


하지만 지금은 화장이 일반화됐고 저만 해도 내가 죽은 뒤 굳이 화장해서 납골당이나 수목장 등 굳이 찾아갈 장소에 보관해야 하나 합니다.

저는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부패해서 탄소, 산소, 수소 등의 원소로 환원될 텐데 무덤이니 제사니 이런 건 그냥 관념이고 지배층의 통제를 위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선 우리나라 상위 1%에게 풍수는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풍수를 따져서 집터도 잡고 묫자리도 잡는다는 거죠.

그들에겐 죽어서도 자신이 일군 부와 권력이 자손들에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거겠죠.

반대로 영화 속에서 무당 김고은이 ‘묫바람’이라고 하는 묫자리를 잘못 써서 후손들이 화를 입는다는 생각도 깊이 박혀 있나 봅니다.

21세기에도 연예인을 그만두고 무당이 되고 20대 초반 젊은 여성 무당이 유튜브를 하니 과거야 말해 뭐 하겠습니까.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곳은 영화 후반부 첩장(남의 묘 위에 겹쳐서 묘를 쓰는 행위)이 밝혀지고 겁나 험한 것이 나온 뒤부터였을 겁니다.

여기서 건국전쟁 감독이 왜 그리 급발진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승만이 친일파였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무장독립투쟁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미국에 외교적인 방식에만 기댔고 항일 무장운동파와는 척을 졌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은 합니다.

또한 권력욕이 너무 강했기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들을 적극 기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하는 등 사리사욕이 앞섰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승만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관점에는 절대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승만을 정치적 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승만과 척을 졌던 모든 사람들을 다 반일주의, 좌파의 프레임에 씌우는 것 같습니다.

파묘에서 다룬 이른바 ‘일제 쇠말뚝설‘이 자신들의 역린을 건드린 게 아닌가 합니다.


https://youtu.be/20bcsQrb6MY?si=gQIeQdK2CkOi8716

1995년 3월 12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실제 보도했던 영상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일제가 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전국적으로 쇠말뚝을 찾아서 뽑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는 최민식을 보고 유해진이 그거 99%가 토지측량하려고 박은 걸로 밝혀지지 않았냐고 하지요. 최민식은 “그럼 1%는?”이라고 되묻죠.

사실 전 일제가 실제 정기를 끊기 위해서든 토지측량을 위해서든 그걸 굳이 뽑을 필요가 있냐는 편이긴 합니다.

일단 그 정기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이며 그걸 쇠말뚝을 박는다고 끊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제가 너무 T인가요?


어쨌든 영화 속에서 한국과 일본 무속의 차이점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귀신은 보통 한을 풀지 못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남아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하고 그 한이 풀리면 돌아가고 보상을 해줍니다.

장화홍련전이 대표적이죠. 도깨비 역시 무섭지만 장난도 잘 치고 사람에게 속기도 잘하고 뭔가를 받으면 대신 선물도 주지요. 혹부리영감 이야기처럼요.

하지만 일본 귀신이나 오니(일본의 뿔 달린 도깨비)는 무조건 무섭기만 하고 그냥 사람을 죽입니다.

링의 사다코와 주온의 카야코를 보면 단지 비디오테이프를 봤단 이유로 죽고, 그 집에 산다는 이유로 죽어나갑니다.

전 무속은 물론 종교 역시 믿지 않지만 일제 35년이 남긴 흔적은 무속과 민간에 꽤 깊은 상흔을 남겼을 겁니다.

그러니 무속과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일제 쇠말뚝이 단순한 도시전설로 치부될 리가 없고 찾아서 없애고 그로 인해 생긴 한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을 겁니다.


대한 일본인 호사카 유지 교수의 관람평을 보면 제가 몰랐던 일본의 음양사와 실제 일제강점기까지 음양사를 통해서 한반도에서 실제로 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저는 일제 쇠말뚝이 사실이든 아니든 신경 쓸 필요 있냐는 쪽이지만 이런 소재가 흥미진진하긴 합니다.

제 생각엔 파묘가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영화라기 보단 이런 세간에 깔린 도시전설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와 조명과 음향을 굉장히 잘 썼기에 자칫 뻔하게 흐를 수도 있던 소재와 결말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재를 정치적으로 좌우 이념대결로 본다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히틀러와 독일의 만행을 다룬 영화들은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김덕영 감독은 히틀러의 잔당들이 아직도 살아서 음모를 꾸미고 있고 그걸 캡틴 아메리카가 박살 내는 마블 영화도 좌파, 반독 영화라고 생각할까요?


감상 후기를 마무리하며 호사카 유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화 ‘파묘’ 관람평을 한번 보시죠.

정치성향을 떠나 일본에서 태어나 공부한 지식인이 음양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시면 재밌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S2waPYKE7PPZ6H9d/?mibextid=Cx5MWH


영화 속 일본 오니역을 한 김민준 배우. 전체 풀샷은 CG로 키운 줄 알았더니 실제 키 220cm의 중앙대 농구선수 김병오 선수를 기용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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