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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엽지만 가엽지 않은 엠마 스톤

영화 <가여운 것들> 관람 후기

 얼마 전 본 영화 <가여운 것들>을 봤습니다.

 TV 영화 소개 프로에서 처음 접했는데 성인의 몸에 갓난아기의 뇌를 연결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원작소설이 프랑켄슈타인의 재해석이라고 들었습니다.

 엠마 스톤이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노출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무엇보다 영화 소개 프로에서 본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고 환상적인 화면들이 저를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영화는 정말 파격 그 자체가 맞았습니다. 노출의 수위도 세고 기괴한 설정과 파격적인 표현 모두가 신선함을 떠나 자칫 역겨울 수도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 보시려면 멀미약 복용을 권해 드립니다. 저는 비위가 강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편안하게 보지도 못했습니다.


티저 포스터들. 특히 첫 번째 포스토는 몸과 뇌가 일치하지 않는 벨라의 상황을 상징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만의 아카데미상을 예상해 봤습니다.

 저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여우주연상은 무조건 엠마 스톤이고 미술상, 촬영상, 편집상에도 투표해야겠다 했습니다. (작품상, 감독상은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있으니까요.)

 결과는 이미 나왔듯 작품상, 감독상 등 11개 부문 후보 중 여우주연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등 4개 분야에서 수상했습니다.

 여우주연상은 말할 것도 없고 팀 버튼 감독의 전성기 시절 영화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장 피에르 쥐네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세트 디자인과 색채가 놀라웠습니다. 비주얼적인 면을 중시하며 영화를 보신다면 시각적 충격을 경험하실 겁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을 보지 못했기에 그가 기괴하고 기묘한 영화를 잘 만든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의상은 19세기말의 화려하고 퇴폐적이면서 어딘가 현대적이기도 한 의상들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분장 역시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 같은 윌렘 데포의 온 얼굴을 꿰매 놓은 듯한 분장만으로도 상을 받을 만했습니다.

 촬영상과 편집상은 오펜하이머라는 강력한 경쟁작에 밀렸지만 흑백과 컬러, 초광각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를 오가는 정말 독특한 촬영기법으로 색다른 화면을 보여줍니다. 편집 역시 시간과 장소를 오가며 가끔 관객을 아무 준비 없이 파격적인 다음 장면과 맞닥뜨리게 하는 신선함과 충격을 줬습니다.




 제가 영화 감상기에서 스포일러는 자제하려는 편이지만 이번 영화는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제 느낌을 설명하려면 전후 맥락과 장면에 대한 서술이 없이는 불가능하겠다 싶었고 사실 이 영화 우리나라에서  절대 흥행이 잘 될 영화가 아니기에 보실 분도 얼마 없을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약한 스포일러를 알고 보셔도 감상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네요. 그만큼 각자가 느끼는 점이 많이 다를 것 같은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겠다고 하니 집사람의 반응은 "그거 야하다며?"였습니다.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혼자 보라더군요. <쌍화점>도 같이 본 사람이...


 보고 나니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노출이 많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절대 야하다고 할 수는 없는 영화였습니다. 몸만 성인이지 두뇌는 아기였던 주인공이 사회의 규범과 선입관이 전혀 없이 세상을 만나면서 압축된 발달과정을 겪습니다. 마치 프로이트의 정신발달 이론처럼 차츰 성에 대해 눈 뜨고 집착하기도 하다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도 느끼며 마지막엔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가여운 것들을 포용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주체적인 여성이 되는 성장기였습니다.


태아의 뇌를 자살로 죽은 임산부의 뇌에 이식하여 살려냅니다.


 런던 타워브리지에서 투신자살하는 여성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타이틀이 지나간 뒤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면서 의사인 고드윈 백스터 박사(윌렘 데포)의 커다란 저택에 사는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가 돌 지난 어린이처럼 음식을 먹고 뱉어내고 집어던지는 모습이 나옵니다.

 투신자살한 벨라는 사실 임신 중이었고 태아만 살아있는 상태였는데 백스터 박사가 몰래 시신을 가져와서 태아의 뇌를 꺼내 엠마 스톤의 머릿속에 이식하여 깨어납니다.

 즉 몸은 엄마인데 뇌는 자식인 셈이죠. 몸은 성인이지만 돌 지나 갓 걸음마 시작한 아기처럼 행동합니다.


 백스터 박사는 의대에서 강의를 하는데 자신을 존경하고 성실한 학생 맥스 맥캔들리스(라마 유세프)를 조수로 채용해서 벨라를 관찰하도록 시킵니다. 벨라는 어린이의 뇌를 가진 채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오직 백스터 박사의 실험체로서 관찰 대상으로만 지내다 보니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있어도 그저 본능에 충실할 뿐입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맘에 안 들면 악을 쓰고 마구 떼도 씁니다. 몸이 성인이어서인지 뇌의 발달은 아주 빠르게 진행됩니다.

 맥스는 몸만 성인이지 아기나 다름없는 벨라를 관찰하고 돌보다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되고 백스터 박사는 둘이 결혼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맥스와의 결혼 준비를 위해 고용한 바람둥이 변호사 던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이 벨라에게 반해 데리고 도망치면서 벨라는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상 유아 약취 유인, 성착취범인 바람둥이 변호사 던컨역을 참 능청스럽게도 잘 해낸 마크 러팔로


 던컨은 순진을 떠나 순백의 뇌를 지닌 아름다운 벨라를 데리고 다니면서 성 노리개나 마찬가지로 씁니다. 문제는 벨라가 (머리는 어리기에) 처음 접한 성에 너무 적극적인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성이 부족하다 보니 호텔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없이 직설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싸움의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화나면 헐크가 될 수도 있는...) 던컨은 안 되겠다 싶어 벨라를 몰래 짐 가방에 실어 고급 유람선에 태우고 떠납니다. 배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고 책도 읽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세상이라는 것에 눈을 뜹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를 보고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빈민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가여운' 사람들을 보고 슬퍼하면서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던컨이 카지노에서 딴 거액을 선원에게 맡기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버립니다. 물론 그 돈은 선원 2명의 품속으로 사라졌지만요.


 돈이 다 떨어져서 강제로 파리에서 하선한 뒤 숙소도 없이 거리에서 눈을 맞고 있었기에 백스터 박사가 챙겨준 돈으로 숙소를 구하려던 벨라는 간단히 남자랑 자고 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포주의 꾐에 빠져 매춘업소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별의별 밑바닥 인생 남자들을 겪지만 한편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합니다.

 책도 많이 읽고 동료 매춘부와 함께 청강생으로 의대 수업도 듣고 어느 정도 돈도 벌면서 매춘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던 중 완전히 망가져 버린 던컨이 찾아오고 아직도 벨라를 사랑하는 맥스도 찾아옵니다. 이후 벨라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생각할 거리가 떠오릅니다.

 첫째. 이 영화가 페미니스즘 영화인가입니다. 최근 PC주의에 대한 피로감과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격렬해 보이는 페미니즘과 반 페미니즘의 충돌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여주인공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주체적으로 매춘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페미니즘이냐 하는 주장도 있지만 저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벨라가 주체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난 고난으로만 보였습니다. 본인도 이용당하고 잘못된 것인지 몰랐고 나중에 깨닫고 그만두는 것으로 보여주지요. 저는 페미니즘에 대해 찬반의 의견이 없고 그런 논쟁 자체가 피곤합니다.

 이런 논란을 접하면 저는 항상 이야기합니다. 남녀가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왜 싸우느냐고요.

 주인공이 남자로 바뀌었다 해도 역시 저의 관점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겁니다.


 두 번째는 도대체 가여운 것들은 누구인가입니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의 결혼과 임신으로 자살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태아의 뇌를 갖고 되살아나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던 벨라일까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생체실험 대상으로 학대당해서 성불구자가 된 백스터 박사일까요?

 성욕이 넘쳐나고 벨라를 이용하고 버리려다 오히려 파멸하는 던컨일까요?

 착하고 순수해서 벨라를 사랑했지만 던컨에게 빼앗기고 백스터 박사에게 맨날 욕이나 먹어도 여전히 벨라를 그리워하는 맥스일까요?

 벨라가 목격한 빈민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아내가 자살하고 되살아나도 자신을 몰라보는 전 남편일까요?

 하다못해 유람선에 타고 있는 승객들도 나름 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주인공 벨라야말로 ‘가여운 것들’ 중 가장 가엽지만 스스로 꿋꿋하게 이겨냄으로써 더 이상 가엽지 않게 됩니다.


 또 다른 논란은 아마도 표현의 과격함, 기괴함이 아닐까요?

 태아의 뇌를 임산부에게 이식한다는 설정부터 백스터 박사 집에 살고 있는 개닭(머리는 개, 몸은 닭) 같은 키메라 같은 기괴한 동물들. 그 실험을 하는 백스터 박사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가 아들을 실험체로 생각해서 학대를 당해 기괴한 외모에 식사 때마다 소화액이 분비되지 않아 기계에 의존해서 매번 방울(?)을 생산합니다.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노출씬과 정사씬의 묘사 역시 회수와 수위는 높아도 포르노의 느낌이 아닌 무미 건조하거나 우스운 느낌을 줍니다. 이런 것에 성적 흥분을 하는 건 너무 아니지 않아? 하고 감독이 툭 던지는 듯합니다.


 이런 기괴하고 불편한 장면들과 선명히 대비되던 장면은 하늘에 케이블카가 지나가는 리스본의 도시와 하늘입니다. 정말 환상적으로 아릅답습니다.

 그리스 호텔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잔혹한 빈민굴, 시대나 장소성과 맞지는 않지만 가우디풍의 파리 시내의 건물들, 20세기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르 꼬르뷔제의 건물 같은 묘하게 현대적인 디테일의 런던의 백스터 저택 등 세트 디자인을 보는 시각적 쾌감은 이 영화의 기괴함과 너무나 상반되지만 묘하게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촬영기법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영화는 주로 백스터 박사가 나올 때 흑백화면을 사용하는데 이때 초광각 카메라를 자주 사용합니다. 저택이나 강의실에서 전체 공간이 거의 둥그스름한 화각에 다 들어올 정도로 어안렌즈에 가까운 화면을 보여줍니다. 초광각 렌즈의 특성상 화면 가운데 피사체는 크게 제 비율로 보이지만 주변과 사람들은 모두 왜곡돼서 휘어지고 작게 보입니다. 화면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지요.

 잠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꽤 오랫동안 초광각렌즈를 사용합니다.

 흑백화면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흑백 필름 특유의 세밀하고 강렬한 명암 대비와 함께 조금 거친 필름 질감이 컬러화면과 대척점에 서서 교차됩니다.

 그와 대비된 화사한 색감의 도시와 기차 안, 유람선과 바다, 하늘의 비비드 한 색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전환되었음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연상케 하는 백스터 박사. 얼굴의 수술 자국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놀라운 연출과 주제의식이 여주인공 엠마 스톤이 아니었다면 빛을 발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이고 특히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던 엠마 스톤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틀을 깨고 날아올라 저의 편견을 넘어 명배우로 각인되었습니다.

 천진난만하다 못해 당황스럽기까지 한 아기의 뇌를 가진 시절 벨라는 걸음마를 막 뗀 돌잡이처럼 걷고 선 채로 오줌을 싸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어느 순간 성기를 만지면 쾌감이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된 (정신적으로 청소년이 된) 벨라는 자위행위를 시도하는데 맥스와 가정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위행위를 합니다. 집에 있는 해부용 남자 시체의 성기를 장난감 만지듯 만지기도 하는 등 성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경악스럽지만 사회적 규범이라는 걸 모르는 순수한 뇌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뿐입니다.

 돈이 떨어져 매춘을 하게 될 때도 정말 순진무구해 보입니다. 그리고 연차가 쌓이면서(?) 포주에게 여자가 남자를 고를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든가 늙은 포주(할머니입니다)의 음흉한 접근을 거부할 때와 자살하기 전에 결혼했던(현재의 벨라는 전혀 모르는) 남편이 찾아왔을 때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여 가치의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너무나 훌륭히 연기했습니다.


 국내 흥행이 10만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예술영화 범주에 머물렀다는 게 참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재미나 노출만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영화지만 안타깝게도 비주류 영화입니다.

 기괴하지만 아름답고, 잔혹하지만 따스하고, 충격적이지만 경이로운 영화였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엠마 스톤에 경의를 표합니다.


P.S.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차기작으로 제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았던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감독)>를 리메이크하기로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엠마 스톤이 출연할 거라는 루머가 있기는 한데 원작에서 비중이 그동안 출연작에 비해 약해 보여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래 기사 링크 참조)


https://m.mydaily.co.kr/page/view/2024021921394525954


식당에서 음악이 나오자 본능적인 막춤을 추는 벨라. 뒤에 다리만 살짝 보이는 던컨이 합류하며 같이 추는 막춤은 압권입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큰 도시를 보게 된 벨라. 이 장면 진짜 환상적입니다.
파리보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같은 느낌의 건물과 20세기 오뜨 꾸뛰르 같은 의상이 묘한 조화와 대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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