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여행자다 #1

<SF 연재소설> 2040년 노동의 종말

나는 시간 여행자다


내 소개를 하겠다. 나는 35살의 독신 남자로 직업은 '레트로 인플루언서'다. 사람들은 나를 시간 여행자라고 부른다. 시간 여행자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 나는 2026년에 살다가 갑자기 2040년에 살게 됐다는 점에서 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2026년에 나는 육군 소령이면서 우주비행사였다. 2024년에 NASA의 유인 화성 궤도 다국적 우주선 승무원으로 선발되었다. 우리 10명은 2026년 2월 3일 스페이스 X의 스타십 로켓에 탑승해 약 1년 6개월의 화성행 장거리 우주비행에 나섰다. 우리 임무는 화성 저궤도를 선회하면서 극지방의 얼음이 있는 곳 근처에 화성기지를 세울 곳의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후임 우주선이 화성기지 건설을 위해 자재와 옵티머스 로봇을 싣고 출발할 예정이었다.


지구와 화성 중간 정도에 이르러 우주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상한 천체인지 현상인지 모를 것을 목격했다. 우주 한가운데 아주 작지만 검은 점 주변을 빛이 감싸고돌고 있었다. 마치 초소형 블랙홀 같았다. 가만히 보니 이 미지의 천체 뒤쪽에서 온 별빛이 이 천체의 중력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고 궤도를 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초소형이었지만 주변 공간이 높은 중력으로 휘어지는 현상이다. 물론 그 궤도를 도는 별빛의 일부가 중력권을 탈출해 우리 눈에 와닿은 것이긴 하다. 우리는이 천체를 '미니홀'이라 부르기로 했다.


빛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주선은 당초 궤도를 벗어나 그 미니홀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고 지구와의 통신도 끊겼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중력권에 끌려들어 간 것과 비슷했다. 미니홀의 중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분의 연료를 사용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 더 있다가는 화성은 고사하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으며 조석력으로 인해 우주선과 우리 신체가 모두 국수처럼 늘어나는 '스파게티' 현상이 일어날 판이다

다행히 미니홀은 3시간 만에 사라졌고 우리는 스파게티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



미니홀이 사라지자 지구와 통신이 다시 가능해졌다. 한동안의 기다림 끝에 응답한 NASA의 임무지원 담당 직원은 굉장히 당황한 듯했다. 상대방은 우리가 항상 교신하던 궤도 추적 담당 연구원인 에릭이 아닌 낯선 직원이었다. NASA는 우리보다 더 당황해하더니 한참 시간이 지나 에릭이 화상으로 답신을 해왔다. 전파가 왕복하는데 18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화라기보다 에릭의 설명을 듣고 다시 회신을 보내는 식이었다.


우리는 이 이상한 상황보다 에릭의 외모에 먼저 놀랐다. 에릭은 MIT에서 궤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NASA에서 근무한 지 3년 된 32살의 흑인 청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화면으로 본 에릭은 훌쩍 나이를 먹었다. 에릭은 32살이 아니라 46살이라고 했고 현재 NASA 목성 탐사 프로젝트 팀장이라고 했다. 지구는 16년이 흘러 2039년 6월 11일이란다. 몇 시간 만에 지구가 13년 넘게 흘렀다는 말이다. 우리가 목격한 미니홀이 진짜 블랙홀이었단 말인가? 우리와 NASA는 믿기 어렵지만 미니홀의 높은 중력으로 인해 시간지연 현상이 생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에릭의 설명에 따르면 지구에서는 우리가 실종된 줄 알고 있었단다. 몇 년 후 다시 한번 화성 탐사 프로젝트가 재개되었고 2038년에 1차 화성기지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화성기지와 통신을 해서 사실을 확인했다.

너무 혼란스럽고 아쉬웠지만 지구로 귀환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미 우리의 임무는 후임자들이 끝내놓은 상태였다. 우리 임무를 후임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마무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제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새로운 임무가 내려졌다.


약 6개월의 비행 끝에 해가 바뀌어 2040년 1월 2일 드디어 지구에 도착했다. 대기권 재진입 후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페이스 X 스타베이스로 유도됐다. 발사장이자 착륙장의 발사대는 비슷하면서도 달라졌다. 과거 팰컨 9 같은 로켓을 젓가락 같이 생긴 손잡이로 잡았었다. 역추진 엔진을 가동하자 거대한 로봇 손 같은 것이 착륙 모듈을 양손으로 살포시 잡아서 천천히 바닥에 내려놨다. 해치를 열고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박수 속에 지구의 땅을 밟았다.

우리는 2026년에서 2040년으로 14년을 건너온 시간여행자이자 인간 타임캡슐이 되어 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