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연재소설> 노동의 종말
부드러운 음악과 새소리에 눈을 떴다. 2040년 10월 14일 오전 7시 정각에 알람이 울렸다.
어제 늦게까지 먹은 술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하다. 내가 일어난 것을 아는 '아틀라스'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황태 해장국을 준비하고 있다. 비싼 구독료 때문에 허리가 휘는 것 같다가도 이럴 때는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CES에서 자연스럽게 걸으며 관객에게 인사했던 아틀라스가 14년이 지나니 가정용으로도 사용이 되고 있었다. 5년 된 중고 아틀라스를 구독제로 구매했다. 2040년형 '디 올 뉴 아틀라스'는 성능과 디자인이 더 좋지만 구독료가 20%는 더 비싸다. 각종 미디어에 출연하고 유튜브 채널 수입이 있지만 아직은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래도 14년 동안 물가가 약 2배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는 모두 로봇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때문이라고 한다.
군인과 우주비행사였다는 경력은 이제 써먹을 곳이 없다. 신체적으로는 30대 중반이지만 출생일 기준으로 전역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우주비행사 역시 몇 년 전부터 로봇이 나가고 있어 유인 우주인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14년의 간극은 내 어릴 적 14년에 비하면 140년 같은 느낌 있었다.
그래도 나는 빨리 배우고 적응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새로운 트렌드에 익숙해졌다. 스마트 글라스 등 새로운 디바이스 사용법도 어느 정도 익혔다. 나라에서 나온 보상금과 보험 등으로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새로운 직업도 가지게 됐다. 수많은 방송과 여전히. 인기 있는 것이 신기한 유튜브 여러 군데에 출연하면서 나름 인플루언서가 됐다. 나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명은 '레트로 애스트로넛'이다.
이젠 유튜브 채널 대부분이 AI로 제작된 영상들이다. 직접 출연해서 촬영하는 채널은 유명인들 뿐이다. 물론 나는 2040년에 시간여행자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2020년대 스타일의 레트로 인플루언서이니 직접 출연해서 촬영을 하고 있다. 아직 새로운 AI 작업이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스탭을 고용할 정도로 수입이 많지도 않다.
억지로 일어나서 찬물 세수로 술기운을 몰아냈다. 오늘 오전 내 채널 콘텐츠로 특별한 인터뷰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 서둘러야 한다.
'로봇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씻는 건 여전히 내가 직접 해야 하나? 신형 아틀라스는 씻겨주는 것도 가능하려나? 아니면 스마트 잠옷, 스마트 이불 같은 것이 있어서 자는 동안 안 씻어도 되는 기술은 아직 없나 봐.'
스마트 글라스를 쓰고 식탁으로 향했다. 사용법이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스마트폰이 사라지고 스마트 글라스와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로 대체된 것이 조금 어색하다.
아틀라스의 요리 솜씨는 나무랄 데가 없다. 무리해서 아틀라스를 사기 전에는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밀키트를 몇 번 사다 먹는 정도였는데 아틀라스는 스스로 신선한 재료를 주문하고 내 취향과 컨디션을 반영해서 요리를 한다. 이제는 재료만 사서 3D 프린터로 해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재래식(?)으로 요리해 먹는 것이 맛도 좋고 나만의 작은 사치다. 그래 나는 옛날 사람이다. 아틀라스는 나에게 우렁각시인 셈이었다. 정리와 청소를 잘 못해서 돼지소굴이냐는 어머니의 핀잔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떠났던 2026년 어머니는 62세였는데 돌아와 보니 76세가 되어 계셨다. 물론 14년 전 76세보다 10년은 젊어 보이기는 한다. 의료와 미용 기술의 발달 때문이겠지만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외모 관리에 열심이셨다는 것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황태해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동안 아틀라스는 침대를 정리하며 오늘 인터뷰할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스마트 글라스에 띄워준다.
정말 어렵게 인터뷰를 잡은 마일언 대표는 45세의 기업인이면서 신흥 거부다. 아니, 거부가 된 지 10년도 넘었다. 20대 중반이던 2025년에 AI 기업 TM(Thinking Machine)을 창업했다. 이제는 AI라는 진부한 표현도 사라졌고 모든 것이 AI에 의해서 돌아가지만 내가 14년 전에 기억하던 마일언은 미국이 주도하던 AI 업계 한국을 구원한 천재 젊은 개발자로 불렸다. 피지컬 AI의 원년으로 기억된 2026년에 AI 파운데이션 모델 'Deus X'를 출시했다. Deus X는 기존의 Chat GPT 나 제미나이와 맞먹는 성능인데 훨씬 적은 컴퓨팅 파워와 전력을 사용하면서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뒤이어 범용 AI 칩 'Sejong'을 내놓아서 대히트를 쳤다. 2028년에 피지컬 AI용 칩인 'Jang Youngsil'을 출시해서 현대의 로봇 '아틀라스'와 자율주행 자동차에 탑재됐다. 해외 로봇과 자율주행 차량에도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마일언은 일약 한국의 일런 머스크로 불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나스닥에 상장해서 마일언은 세계적인 기업인이자 자산가로 떠올랐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인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지만 너무 솔직한 발언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인터뷰를 하다 자칫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받으면 상대가 누구든 면박을 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일런 머스크와 닮았다.
'재수 없는 새끼. 그래도 이 놈 인터뷰하면 채널 조회수가 떡상하겠지?'
어쨌든 화상 인터뷰 밖에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AI가 대신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운 좋게 대면 인터뷰 기회를 잡았다. 최대한 좋아 보이면서도 2040년의 유행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빠 옷을 입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온 20살 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어색하지만 최소한의 아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틀라스가 미리 예약해 놓은 로보택시가 집 앞에 막 도착했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지만 오늘은 판교까지 가는 시간도 절약하고 차 안에서 인터뷰 준비를 하려고 로보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준공한 지 20년 정도 된 작은 아파트 단지지만 주차장은 여유가 있다. 로보택시가 보편화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지 않는다.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도 운행을 안 할 때는 로보택시로 돌리고 있다. 이 로보택시도 근처 아파트 단지 스티커가 붙어있는 개인 소유 자동차다.
목적지를 미리 판교의 TM 캠퍼스로 설정해 놨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출발한다. 스마트 글라스에 오늘 인터뷰할 주제와 질문 목록을 띄워놓고 여러 번 연습을 했다. 멀리 TM의 사옥인 일명 '큐브'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