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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공시기간

대학에서 기말시험이 끝나면 채점, 성적공시가 이어진다. 공시기간은 3일 정도이며 대게의 경우 성적확인을 원하거나 근거없이 성적을 올려달라는 애교 또는 읍소가 섞인 메일을 몇 개 받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번학기는 좀 달랐다. 개인 카톡으로 한 학생이 글을 보냈다.


“전체의 40%는 A+를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팀원 모두가 A0를 받았습니다. 저희팀은 30% 안에 드는 것일텐데 왜 A+가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성적이 매겨진 것인지, 중간에 착오가 있지 않았는지 확인차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A+를 40% 준다고 한 적이 없으며 그들의 성적은 상위 30%에 들지 못했다. 교수에 대한 감사나 배려의 말없이 사실무근의 내용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놀라워 수강생 전원과 대화하는 오픈 채팅방에 글을 편집해서 다시 올리라고 하였다. 거의 같은 글이 오픈 채팅방에 올라왔다.  전체의 40%가 A+를 받을 것이라고 어디서 들었는가를 물었더니 확실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곧 이어 질문이 이어졌다.

“정확한 성적 커트라인을 알고 싶습니다.”


내가 물었다. “정확한 성적 커트라인을 알려 주시는 교수님들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 교수님 질문에 더불어 저는 보통 성적 커트라인에 대해 말씀해주지 않으시고 성적을 마무리하는 교수님들이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내일 연구실에서 계속 이야기 하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한 동안 머리가 멍했다. 어떻게 4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예의가 없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젊은 학생들 대화법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학기는 끝났지만 학생들에게 교수와 글로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혹시하는 마음으로 유튜브 검색을 해보니 ‘교수님께 성적 정정 메일 쓰는 법'의 제목으로 여러 영상이 나온다. 그 중 한 교수가 만든 영상에서 깔끔한 인사, 간결한 내용, 배려있는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럴 때마다 당혹스럽다.


교수에게 메일을 쓰는 이유는 협상에서와 같이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설득의 비밀'에서는 ‘교수님 설득해서 학점 바꾸기’를 예시로 설명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이전에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지난 30년간의 교수생활 동안 짧은 줄에 섰던 학생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긴줄과 짧은 줄의 예는 아래와 같다.


성적정정 기간에 메일을 보낸다. (긴줄)

교수가 성적에 관해 회신메일을 보내면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낸다. (10% 미만)  (짧은 줄)

성적이 나오기 전에 교수에게 수업에 관하여 감사의 메일을 보낸다. (1% 미만) (짧은 줄) 


나는 상대평가인 경우 성적 공시에 A, B 에 최대 할당할 수 있는 수 보다 2명 정도 적게 배정한다. 혹시라도 성적을 수정하게 되면 변경할 수 있는 여지를 두기 위해서다. 그러고는 별일이 없으면 최종 공시일에 2명을 더 채운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다.


공시되었던 것 더 높은 Grade를 받은 사람이 수 백명 될 것이다? (긴줄)

그 중에서 나중에 나에게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짧은 줄)  


메일을 쓸때 피해야 할 표현들도 있다. 이번 학기에 받은 메일에도 그러한 것들이 여럿이다.


학생 : 혹시나 채점에 오류가 있지 않은지 확인 한 번 부탁드립니다ㅠㅠ


대화의 기본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올리는 것이다. 유머를 말 할 때에도 상대를 낮추지 말고 나를 낮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수의 실수로 자신이 불이익을 받았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은 이런 기본에 대한 위반이다. 


학생 : 제 노력이 성적에 모두 반영되지 못한 것 같아 문의남깁니다!! 


노력을 많이 했는데 성적이 안 나왔다는 학생들이 많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공부하는 방법이나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 :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크게 잘 못 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답변이 없으면 감사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한 학기동안 유익한 수업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쁘시겠지만 짧게라도 답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 더욱 공손한 표현이다. 시험공부를 하는데 나에게 도움을 준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야, 고맙다 성적 잘 나오면 밥 한번 살게" 보다 "야, 고맙다. 성적이야 어떻게 나오든 내가 밥 살테니 오늘 시간 좀 내주라" 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대화법일 것이다.


학생 : 다른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성적입력을 정확히 하셨으나 시스템 오류로 인해 제 점수가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른 점수로 찍힌다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교수님 수업에서도 저에게 맞지 않는 점수 즉 너무 높거나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 메일을 보냅니다.


시스템 오류가 불안하다면 모든 과목에 대하여 메일을 보냈을까? 이 학생은 A를 받았는데 메일에서 뭘 원하는 지 알기가 어렵다. 성적을 내려 달라는 것인지?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지식은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지식이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말하기와 글쓰기는 나를 세워줄 단단한 두 다리와 같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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