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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진

“혹시 어제 날짜 동아일보를 가지고 있는 학생 있습니까?”


25년 전쯤 어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때는 학생들도 종이 신문을 많이 읽었던 시절이라 그리 이상한 질문도 아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20분 쯤 지났을까? 한 학생이 땀을 흘리면서 연구실로 들어온다. 내가 원하던 어제 날짜 동아일보를 건낸다.


“아니 이걸 어떻게 구했어?”


“장충동에 있는 동아일보 보급소에서 가져왔습니다.”


학생은 숨을 고르며 멋적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무슨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내년이면 교수생활 30년이 된다. 그 동안 몇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을까? 적게 잡아도 2,000명은 될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학생을 손꼽으라면 나에게 더운날에 보급소에서 신문을 가져다 준 김대영이다. 그 학생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졸업 후 연락을 주고 받은 기억도 없다. 그래도 그 어느 학생보다 대영이가 나에게 감동을 준 학생리스트에서 첫 번째를 차지한다. 신문 한 장을 가져다 준 학생이 가장 기억이 남는 이유가 뭘까?


지난 30년 동안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학생들을 생각해 본다. 조교수 시절 내가 술을 사주겠다고 하니까 배부르면 술을 많이 못마신다고 점심부터 굶었던 김해남과 손용준이 떠오른다. 그들은 1차를 마친 후, 2차를 가야한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양손에 검은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나를 반강제로 근처 여관으로 유인해서 방바닥에 앉아있던 나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장풍을 하듯이 밀쳤다. 내가 쓰러지는 순간 공중에 떠오른 두 발에서 번개처럼 양말을 완전히 벗겼다. 그리고는 밤새고 마시자며 검은 봉투에서 술과 안주를 꺼냈다. 그후 15년이 지난 어느 날 김해남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주말에 연구실에 있던 나를 찾아왔다. 그의 옆에는 부인과 5살 짜리 아들도 있었다. 김군은 졸업 후 캐나다로 이민가서 자동차 수리일을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돔페리뇽 샴페인을 선물했던 학생도 있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당시 돔페리뇽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몰랐고 누가 그것을 주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태원 맛집에 데려가겠다고 학생들 4명을 내 차에 태워 가던 중 막다른 골목으로 잘 못 들어갔을 때 차를 들어서 옮기겠다고 장마비 속에서 끙끙거리던 학생들도 기억난다. 지도 교수에게 잘 못 보이면 졸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몇 년 동안 충성을 다했던 대학원생들도 빼 놓을 수 없다. 매년 연구실 모임때 마다 나에게 선물을 주는 기특한 졸업생들도 있다. 이들 보다 신문 한장을 나에게 건네준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뭘까?


“좋은 사진이란 한 방에 훅 들어오는 거에요”


김홍희작가의 유튜브 채널 <착한 사진은 버려라>에서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사진 동아리 게시판에는 아이슬랜드의 오로라, 몽골의 은하수 등의 사진이 자주 소개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아마도 어디선가 비슷한 사진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홍희 작가는 처음 전시회를 했을 때 한 장의 작품을 얻기 위해 평균 5,0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것도 필름 사진을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한 방에 훅하고 훔치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지갑을 열고 시간을 투자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다 줄 때에만 그 사람의 마음에 훅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대영이가 나를 위해 수업을 마치고 그 더운 여름날 보급소에 달려가서 한장의 신문을 가져다준 20분의 시간은 나에게 한 방에 훅 들어오는 완벽한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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