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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블브래그(humblebrag)를 아시나요?

“해외출장 기간이어서 참석 못하네”


대학동창 채팅방에서 모임 공지를 보고 한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또 다른 친구의 답이 올라온다.


“미국에서 손주들이 오는 날이라 불참!"


이 친구들은 회신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로 모임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간접적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험블브래그 (humblebrag)라고 한다. 이는 겸손한(humble)과 자랑하다(brag)의 합성어이며 유명인들이 SNS에서 겸손한 척하면서 자신을 과시하면서 생겨났다. 2014년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된 험블브래그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예들이 나온다. 


"우리 남편은 정말 철이 없어..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하는데..ㅇㅇ 똥 가방을 생일선물로 사주는 바보짓을 한다."


“방금 세금 신고를 했다. 사람들의 말이 맞다. 돈이 많을수록 골치 아프다.” 


“마트에서 계산대 직원이 음흉한 눈으로 나를 훔쳐보다가 계산을 틀리게 할 때마다 짜증이 폭발한다!” 


험블브래그를 우리말로 의역하면 ‘짜증 나는 자랑질’이나 ‘재수 없는 자랑질’ 정도가 될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보면 이런 글들이 차고 넘친다. 정혜신 작가는 ‘당신이 옳다’에서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한다. 더 압축해서 말하면 ‘사랑에 대한 욕구’이다. 나이, 지식, 경륜, 성찰이 아무리 깊은 사람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마음이 뒤틀린다.


결혼 25주년 때 해외여행에서 만난 여성분은 이틀째 저녁식사 자리에서 단체여행 중 자신에게 젊고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분은 대기업 CEO의 아내이고 60세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화가였다. 5분처럼 느껴지는 5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그녀에게 예쁘시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술을 경쟁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마시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비싼 보석들이나 명품 가방도 자신의 부를 나타내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골프에서 드라이버 거리는 스코어에 관계없이 동반자의 기를 죽이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가젤은 사자 눈앞에서 껑충껑충 제자리 뛰기를 한다. 가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은 이렇게 건강하니 주변의 약한 가젤을 사냥하라는 메시지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는 매일 아침 독일인 간수가 유대인 포로들을 원형으로 걷게 하면서 병들어 보이는 사람들을 멀리서 총으로 쏘는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건강하게 보이기 위해서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피를 얼굴에 펴 바른다.


동물은 배가 고플 때만 사냥한다. 사람은 배가 불러진 후에도 계속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 동물은 생존하거나 번식하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사람은 생존, 번식과 무관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존감이 높거나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은 굳이 과시하지 않는다.


험블브래그는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욕구를 SNS 등을 통해 해소하려는 표현이다. 2016년 코넬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험블브래그는 상대방을 친구삭제(unfriend) 하고 싶은 첫 번째 이유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SNS에 그런 글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거울 없이 볼 수 없듯이 남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달 전쯤 험블브래그에 관한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인이기도 한 선배 교수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러겠어요. 우리 역할은 야유보다는 박수쳐 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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