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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un 03. 2023

입사 5년 차, 20개국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의 생각들

같은 시간이지만 다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구본 위의 우리들

서론. 4년의 출근과 그 사이의 출장을 되돌아보며


코로나가 활개 치기 딱 일 년 전인 2019년에 입사한 이후로 현 직장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그간을 되돌아보면 감정의 낙차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고, 모든 순간이 마냥 빛나지만은 않았다. 다른 사람 돈을 벌어 녹봉을 벌어내는 것이 녹록지 않으리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피부에 맞닿는 것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대체로는 칙칙하고 옅은 색을 띠던 회사 생활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흥미로운 일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중에서 기억에 깊게 남은 것들은 해외 출장을 갔을 때의 시간들이었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10일가량 해외에 갔던 때 이외에는 해외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거의 모든 장면들이 더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감상을 남기는 성실한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더 이상 게으른 사람은 되지 않도록 지금이나마 짧은 4년간의 기억을 글로 남겨본다.


첫 번째 출장. 2019년 7월, 중남미 9개국

(멕시코-멕시코시티, 파나마-파나마시티, 에콰도르-과야킬, 과테말라-과테말라, 페루-리마, 콜롬비아-보고타, 칠레-산티아, 브라질-상파울루,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지금도 2019년의 나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는지 싶다. 2019년 4월에 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나의 해외출장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설마 사무실에 오자마자 출장을 보내겠나 싶었던 의구심은 하루, 한 주, 한 달이 지날 때마다 그 껍질을 벗고 현실로 다가와 어느덧 뺨을 마주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출장도 출장이지만 해외에 가본 적도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쟁이 말단의 선택권은 크게 없는 편이었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출장길을 나서게 되었다.


멕시코 In ~ 아르헨티나 Out의 중미를 시작으로 남미에서 끝나게 되는, 한 국가에 3일 정도 머무르는 일정이었기에 여유를 즐기며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들 들리는 언어의 생경함에 압도당하고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이질감과 새로운 자극에 매료당했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출장을 가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주변의 풍경이나 도심지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게 된다. 관광지나 유적지에 가서 그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에 압도당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도로에 어떤 차들이 다니고, 길이나 매장에서 어떤 것을 사고팔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하는 것들에도 아름다운 풍경 못지않게 관심이 가게 된다.


페루 리마에서 길을 걷다 마주친 행사. 성대한 축제나 관광지보다는 광장에서 하는 이런 행사를 보는 것이 그 나라에 더 스며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은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이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롭다. 혼자 가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표면적인 경험에 머물 때가 많지만, 그 뒷이야기까지 듣고 나면 같은 풍경이더라도 다르게 보인다. 고대의 역사, 식민 지배의 영향, 식습관과 종교, 기후 및 지리적 환경 등 굳이 역사에 깊은 관심이 없더라도 문화를 알 경우와 알지 못할 경우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큰 편이다.


겉과 속이 달랐던 경우의 일례를 소개해본다. 출장지가 있던 지역에는 유독 높고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빌딩들이 많았다. 출근길에 혼자 본 빌딩은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현지에서는 빌딩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빌딩을 짓는 것이 돈세탁에 활용된다는 것이었다. 우선 출처가 미심쩍은 자금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 돈을 가지고 그럴싸한 외관으로 빌딩을 짓는다. 그 후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 돈을 챙기고 빌딩을 넘겨버린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돈세탁을 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침햇살에 빛나던 빌딩들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보였다.


아침나절에 봤던 빛나는 하늘과 빌딩

브라질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모두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중미~남미 대부분 스페인어가 통용되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결론적으로는 시작도 안 했지만, 출장 기간 약 한 달가량을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지내며 인사와 감사, 숫자세기, 지칭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었다. 업무에 관련된 설명들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신기하게 억양과 아는 단어를 조합해 가며 뉘앙스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현지 직원과 업무를 볼 때는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내가 말한 영어를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주는 식이었는데, 나를 도와주던 직원과 현지 직원이 말하는 스페인어를 어렴풋이 듣고 아는 단어로 반응했더니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서 통역을 부탁한 거 아니냐고 직원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비단 중남미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확실히 소득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빈부격차에 대한 체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도심지나 상업지역은 여타 국가와 다르지 않지만 그 지역을 벗어나면 아예 날것의 세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가옥구조와 크기, 밀도, 주변 환경 등 같은 나라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들이 허다했다. 우리나라도 도심지와 시골,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명백히 있지만, 그 Range 차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나라들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타 지역 출장기에서 더 풀어내보겠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도로를 지나며. 사무실 건물이 있는 동네와는 사뭇 다른 세상 같았다.

여유로운 일정이 아니었던 것은 맞지만, 주말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 국가에서 길어야 3일 정도만 머무르기 때문에 주말에 어떤 나라에 머무르게 되는지는 출장 일정에 달려있었고, 19년 출장에서는 과테말라와 페루, 칠레에서 주말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 나라별로 볼 수 있는 풍경과 느낄 수 있던 감정들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좋았다.


과테말라에서는 현지 사무실 분의 도움으로 안티구아(Antigua)에 다녀올 수 있었다. 막연하게 커피가 유명한 지역으로만 들었었던 안티구아는 자연이 너무 아름다웠다. 여행에는 사 탐방,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데에서 오는 행복, 맛있는 음식, 새로운 문화 탐방에서 오는 지적 고양감 등 다양한 목적이 있을 것인데 안티구아에서는 역사 깊은 지역을 마주함에서 오는 경외감, 많은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음에서 오는 일종의 뿌듯함과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역사 깊은 풍경은 지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인상 깊었다.

과테말라에서는 대표적 장소인 안티구아에 다녀왔었다면, 페루에서는 수도인 리마 근처의 소소한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숙소에서 출발해 우버를 타고 근처에 있는 공원이나 바닷가를 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주변 산책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에 녹아들어 가는 것도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한 나라의 문화에까지 녹아들어 가는 것은 쉽지 않기에, 낯선 풍경에 우두커니 서서 얕게나마 그 세상의 일원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 되어준다.


페루 리마의 도로 풍경. 꼭 눈부신 절경이어야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었다.

칠레서는 하루 일정의 투어를 두 곳 다녀왔다. 스키장 앞의 호수인 Portillo를 포함한 두세 곳을 돌아주는 투어가 하루, 와이너리인 Concha Y Toro를 다녀오는 것이 하루였다. 마침 계절이 겨울이었기에, 스키장 앞의 호수와 산은 눈이 멀 것만 같은 설경을 뽐내고 있었다. 풍경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그 앞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앉아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장엄한 설경 앞에 놓인 주먹만 한 눈사람은 풍경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인상 깊었고, 신나게 사진을 찍던 나를 본 할아버지께서는 이 눈사람을 본인이 만든 것이라며 혼자온 나에게 눈사람과 사진을 찍어주시겠노라고 기뻐하셨다. 생에 다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설경과 그곳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기억이 상호작용을 통해 칠레의 호수를 기억에 더 오래 남도록 해주었다.


칠레의 Portillo 호수 설경, 그리고 그 앞에서 만난 눈사람

와이너리인 Concha Y Toro에서의 험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취미를 갖도록 해주었다. 그전에도 와인을 좋아하긴 했지만, 포도와 와이너리를 직접 보고 그곳에서 바로 맛보았던 와인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출장을 다녀온 이후로도 가장 열심히 마시는 것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와인이다.


칠레 Concha Y Toro 와이너리의 오크통 및 저장고. 와인 도둑이 너무 많아 와이너리에 악마가 산다는 소문을 퍼뜨려 도둑을 막았다는 디아블로 와인의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다.

중남미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리우 데 자네이루 근교를 몇 군데 다녀올 수 있었는데 엘 아테네오 서점과 레콜레타 묘지가 기억에 남는다. 엘 아테네오 서점 건물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외국의 서점을 가보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 나라의 서점에서 유명한 도서, 잘 먹히는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있고, 아는 책이나 읽었던 책을 외국에서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이 이후로 외국에 가면 서점이나 면세점 책 코너를 재밌게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엘 아테네오 서점. 실용성을 떠나 건물 자체가 매우 아름다웠다.

레콜레타 묘지에서 문화의 다양성과 그 내면에 있는 인류의 공통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영화 "코코"에 나오는 것처럼 사후세계 문화와 연관된 그들의 공동묘지였다. 특히 레콜레타에 있는 묘지는 나라의 저명한 인사들의 무덤이 많다고 한다. 마치 사후의 집을 지어주는 것처럼,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묘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묘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인사를 남기러 오는 듯했다. 이역만리의 무덤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고인을 생각하는 마음 자체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닌 그곳에 담긴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아르헨티나의 레콜레타 묘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들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나의 첫 번째 해외출장이자 장기출장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분명 힘든 일도 많았고, 처음 해보는 해외출장 업무도 쉽지만은 않았고, 출장의 중간 무렵에는 열과 몸살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출장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업무적으로도 이때의 경험은 이후의 회사 생활에 직접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나를 담금질해 주었다.


두 번째 출장. 2023년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2019년에 출장을 다녀온 이후, 야속하게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고 코로나 기간 동안 출장은 중단되었다. 그렇게 3년을 출국 없이 보내고 나서 2023년 2월이 돼서야 다시 출장길을 나서게 되었다. 2019년 출장과는 목적이 달랐기에 이번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약 1주일간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이전에 대학교 동아리 활동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UC버클리를 5일 정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같은 미국이지만 버클리와 라스베이거스가 나에게 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버클리가 평온하고 잔잔한 느낌으로 나를 쉬어갈 수 있게끔 해주었던 도시였다면,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함과 웅장함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피력할 수 있다는 기조를 가진 완고한 맥시멀리스트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금문교, 샌프란시스코 (2015년)
라스베가스의 거리 (2023년)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카지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물론 메인스트립에 서있노라면 사막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도 않고 모래가 보이지도 않는다.) 짧은 기간이나마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며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목도할 수 있었다. 돈에게도 일종의 관성과 중력이 있는 것 같다. 큰돈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돈)으로 밀어줘야만 하고, 큰돈은 그 자체만으로 다른 돈을 끌어오기도 하는 듯했다.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는 매일밤 분수쇼가 열리는데, 아름다움과 재력을 뽐내는 동시에 돈의 흐름을 도시에 잡아놓으려는 행위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비슷하게 라스베이거스에서 성대한 쇼를 여는 것 또한 큰 쇼와 큰돈이 서로 이끌려온 것이 아닐지 한다. 


여담으로는 차이니즈 머니의 힘을 다시금 미국에서 느낄 수 있었다. Happy Lunar New Year가 쓰인 빨간색 광고물, 한자로 쓰인 謹賀新年, 호텔 로비의 중국풍 장식물들을 보니 중국인들이 카지노의 주요 Target 고객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 저녁에 일정 시간 간격으로 노래와 함께 분수가 춤춘다.
베네치아 호텔 내부의 가짜 하늘과 수로, 수로를 타고 이동하는 배. 인지부조화가 올 것만 같은 장면이다.


물론 이런 라스베이거스라고 해서 모두에게 돈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었다. 돈의 규모만큼 빈부의 격차도 큰 듯했고, 일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셰프분의 고충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전자 관련 회사에 근무하시다가 이제는 일식 요리를 하고 계신 셰프님께 들어보니 미국에서는 연봉 10만 불을 받더라도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다고 한다. 시장경제가 강대한 만큼 기본적인 물가나 비용 자체도 높은듯했다. 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이후 두바이 출장에서 갱신되었다.


출장의 목적이었던 전시회, 그리고 매장 방문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점도 있다. 국은 확실히 'Do It Yourself'의 문화가 매우 강했다. Home Depot 같은 매장을 가면 온갖 코드와 타일, 벽지, 손잡이, 공구 등 모두 스스로 고르고 만들어야 하는 것들 투성이임을 볼 수 있었다. 돈은 많지만 인건비도 그만큼 높기에 여간한 것은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일지 싶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런 자재들을 나르기 위한 픽업트럭이 도로에 많은 것도 인상 깊었다. Bulky 한 날것의 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느낌은 딱 그러했다. 그렇기에 기성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선택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손잡이, 수도꼭지만 해도 종류가 수십 가지가 전시되어 있기 일쑤였다. 미국에 제품을 판매할 때에는 디테일에 대한 선택권 또한 중요하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 번째 출장. 2023년 3월, 베트남과 대만

(베트남-호찌민, 베트남-하노이, 대만-타이베이)


세 번째 출장은 아시아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 대만 타이베이를 다녀왔는데, 타이베이는 여행으로 한번 갔다 왔지만 베트남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도 컸고, 또 그만큼 관심 있게 보고 온 것 같다. 베트남-대만-한국 순으로 이동하며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더라도 시대상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국가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 다만 국가의 상황과 수준에 따라 발전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은 이후에 중동과 아프리카를 다녀오며 더 확고해지게 되었다.


베트남 도로의 느낌

베트남어와 중국어를 쓰는 국가이다 보니 영어를 할 수 있는 것이 큰 의미는 없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영어로 가능했지만 그 외에 일상생활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모국어(한글) + 영어 + 추가 외국어 1개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히 해외 관련 업무를 할 때 강점이 되겠구나 하는 것을 현지에 가면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업무에 필요하면 통역 인원을 지원해 주지만, 100%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도 있고 업무처리 속도도 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를 제외하고는 스페인어가 Coverage가 좋은 편인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중국어인데, 중국어는 그냥 중국 인구가 워낙 많아서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의 계절과 날씨 차이가 큰 것도 인상 깊었다. 위도 차이가 꽤 나다 보니 하노이의 연간 온도 차이가 더 크다고 하며, 겨울에는 온도가 한자릿수로 내려가면 패딩도 입는다고 했다. 온도는 절대치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비교 수치가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에 한국 교민이 꽤 많아서 아파트나 동네도 있고, 학원도 있고, 한인마트와 한식당도 있고, 심지어 투다리도 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대만 타이베이는 워낙 도심지에만 짧게 있었다 보니 외국 생활의 불편함을 느낄 새가 별로 없었다. 베트남과 대만 모두 음식은 입에 아주 잘 맞았어서 좋았다. 우육면과 밀크티, 국수가 기억에 남는다. 타이베이는 나중에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깔끔하게 맛있었던 국수와 고기, 공심채. 백년도 넘은 가게였다고 했던것같다.

이렇게 딱 일주일 정도 다녀오는 출장이 체력적 부담도 적고 적당한 것 같다. 이 이후로 4주 반 출장을 가게 되었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되는 것 같다.


네 번째 출장. 2023년 4월~5월, 중동 및 아프리카 8개국

(나이지리아-라고스, 남아공-요하네스버그, 케냐-나이로비, 모로코-카사블랑카, 이집트-카이로, 요르단-암만, UAE-두바이, 튀니지-튀니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오공감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1992)

운명론을 믿지는 않지만 슬픈 예감의 적중률은 높은 편이다. 베트남과 대만을 다녀와서 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다음 출장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흐르기 시작한 낙수 같았던 이야기는 어느새 물줄기가 되고, 물줄기는 개울이, 개울은 계곡과 폭포가 되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릴 무렵 나는 나이지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공항에 착륙하고 나서, 나이지리아의 도로에서


2019년에 아무것도 모르고 떠날 때와 2023년에 대략적으로 회사와 업무를 알고 떠날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치과의 신경치료도 1회 차보다는 그 고통을 아는 2회 차가 더 괴롭고, 음식도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지난번 한 달간의 중남미 출장은 예방접종보다는 무서운 구전동화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출장이 무사히 끝나면 이런 걱정들도 기우로 그치게 된다. 이번 중동과 아프리카 출장도 결과론적으로는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라틴, 아프리카, 아랍 등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문화권으로 가게 될 때는 혹여나 그들에게 누가 되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지 않을지 걱정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종교적인 용어 및 행동, 주변국과의 관계 및 역사 등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비슷해 보이더라도 금기되는 표현들이 있었다. 다행히 큰 실수를 할 기회가 많이 없기도 했고 논쟁거리가 될 만한 문제나 말실수는 다행히 하지 않았다. 이런 중대한 내용 외에도 사소하게 한국이나 아시아 문화권과 다른 부분들도 많았다. 아랍권의 휴일은 토/일이 아니라 금/토인 것도 사실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내용인데 종교관이 다른 것을 생각해 보니 납득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지 직원들과 미팅이나 업무 진행을 할 때 그들이 기도를 하는 시간 및 시기도 감안이 필요함을 출장에 가서 알 수 있었다. 금요일 낮에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다른 요일보다 점심시간이 길게 필요하다는 것도 출장을 가서 겪어보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을 일이었던 것 같다.


이번 출장의 첫 세 국가들이 나이지리아, 남아공, 케냐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리카 분들에게 내적으로 기가 많이 눌렸었다. 출장을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낯설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확실히 한국인, 아시아인 자체가 거의 없는 나라들에 가다 보니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다. 첫 국가인 나이지리아에서는 공항에서부터 캐리어를 찾아주고 차량 기사님께 안내해 주는 (자칭) Friends들에게 친구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들어보니 공항 데스크 직원, 공무원 등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런 "For me" 행동이 낯선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낯설지 않다고 해서 정당화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겠으나, 임금 자체가 워낙 낮다 보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쉽지 않은 듯했다. 경찰 일을 하면서 월급 외에 이런 친구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오지 않으면 집에서 불만을 표출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납득은 아니고 어느 정도 납득과 몰이해의 타협점 정도까지는 나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이 있더라도 나라에 총만 없으면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 같다. 돈은 뺏기겠지만 바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겠구나 하는 다소 안일한 생각도 이제는 하게 되는 것 같다.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중에서 어떤 곳이 가장 위험하고 무서웠냐는 질문을 한번씩 받게 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1:1 비교가 잘 안 된다. 중남미에 다녀온 것은 회사에 오고 나서 제정신을 차리기 전 시점이어서, 마취가 풀리기 전에 한 대 맞은 느낌이고, 중동과 아프리카는 어느 정도 몸에 감각이 있을 때 맞은 느낌이라서 정량적 비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총기류의 유무로 생각해 보면 중동과 아프리카가 위험한 동네만 가지 않으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여행으로 가기에는 아프리카쪽이 포인트가 더 적은 편인 것 같아서 다양한 경험을 목적으로 여행을 간다면 중남미로 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큰 욕심 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휴양하는 정도라면 중동 지역으로 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이번 출장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나라들이 요르단과 튀니지였다. 요르단은 생각보다 도시 분위기 자체도 깔끔했고, 종교적인 성지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광야가 요르단 지역이었다고 하며, 일정상 가보지는 못했지만 요단강도 요르단에 있다고 한다. 그 밖에는 붉은 사막으로 불리는 '와디럼'을 못 가본 것이 아쉬웠다.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풍경에서 마션, 스타워즈, 듄 등 SF영화를 많이 찍었었다고 한다. 튀니지의 경우에는 지중해에 맞닿아있는 해변과 하늘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와인과 해산물, 올리브도 모두 맛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튀니지에서 먹었던 일본식 라멘이 그 신기한 조합 때문에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빈부격차와 소득 수준의 차이에 대해서는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 도심지와 외곽지에서의 시대와 문화를 쫓는 속도가 조금 다른 것 같다. 같은 2023년에 도심지는 어느 정도 현대의 시간과 문화를 따라가고 있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눈을 돌려보면 그들은 흙으로 만든 집에서 양 떼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양치기가 낮은 수준의 직업이나 문화라는 의미는 아니며, 다만 그들의 상황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생기는 국가와 지역 별 문화 적용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로 빗대어보자면, 굳이 저그가 하이브 유닛을 쓸 것이 아니라면 해처리나 레어 상태로도 충분하다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실 국가 별 차이가 있더라도 얼마나 크겠냐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이런저런 나라들을 가보며 이런저런 이유에 따라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직접 배울 수 있었다.


도심지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이런 모습을 더러 볼 수 있었다. 사진은 케냐의 모습.


이번 중동-아프리카 출장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큰 충격이자 자극을 받았던 것은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제 및 자국민 관련 정책인데, 에미라티(Emirati)라고 부르는 자국민에 대한 복지와 혜택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UAE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만 자국민인 에미라티이며, 나머지 90%는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국가는 에미라티에게 금전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용돈이나 학비 지원뿐만 아니라 집 구매 시 융자 시스템 또한 잘 되어있고 정확하게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이 융자금을 꼭 다 갚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전기세나 물세도 내지 않았던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이니 에미라티의 경우 생계를 위해 굳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노동을 할 필요도 없어 보였고, 직장에 다니더라도 공무원을 주로 하는 듯했다. 채용 시 에미라티를 일정 비율 뽑아야 하는 일종의 쿼터제도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좋든 싫든 에미라티를 일부 채용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무를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하지 않기도 하고 주변 분위기를 흐리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에미라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 이런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자국민을 과도하게 챙기는 정책이 아닌가 싶었지만, 국왕과 왕족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니 또 마냥 낭비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왕족들의 성향이 이타적이고, 석유가 고갈되는 미래 시점까지 상정하여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한다. 국왕 산하 싱크탱크의 규모와 수준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리고 두바이에 그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호텔과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것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석유가 고갈된 시점의 경제 모델까지 고려한 장기적 투자라는 말을 듣고 나니 마냥 사치와 과시를 위해서 최대/최고 건물들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두바이에서 돈과 사업의 규모를 듣고 놀란 것도 있지만, 이와 같은 장기적 방향성과 정책도 꽤나 인상 깊었다.


두바이의 대표적 상징물이자 호텔인 버즈 알 아랍과 부르즈 할리파. 버즈 알 아랍은 1999년도에 오픈했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아름다운 것 같다.
두바이의 인공섬 팜 쥬메이라. 2001년 건설을 시작하여 2006년 완공되었다. 규모도 놀랍지만 2006년이라는 것이 더 놀랍고 무서웠다.


UAE가 경제적 부유함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다면, 경제적 어려움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은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의 사정을 들었을 때이다. 출장을 가서 업무를 보다 보니 가전제품 매장에서 발전기를 파는 경우도 꽤 있었고,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온 동네의 불이 꺼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관련하여 사정을 들어보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지역 별로 하루에 몇 시간씩 전기 공급을 중단하고 있었다. 국가 별 경제 사정은 모두 다를 수 있기에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려 했지만, 현시점의 어려움은 절대적으로 자원이나 자금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관련 기관 고위직의 부패가 큰 이유라는 것을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비단 전력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주변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데, 결국 이런 문제들은 정치/인종 갈등으로 이어져있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 이후 흑인 인권이 신장된 것은 긍정적인 사실이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며 기득권의 부패 및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 일부 생겨났다고 한다. 채용 시 흑인을 일정 비율 뽑아야 하는 흑인 쿼터제 시행 때문에 백인들은 비슷한 조건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과적으로 백인들이 외국으로 많이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평등과 인권 신장이 분명 나쁜 의도와 의미는 아니지만, 결국 완벽하고 이상적인 평형 상태는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남아공의 사례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점


좋은 일, 힘들었던 일, 뿌듯했던 일 등 이런저런 대소사를 겪으며 회사에서의 4년이 흘러갔다. 이제는 대학교를 다닌 시간보다 회사에 있던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고, 이 시간은 좋든 싫든 나에게 많은 영향과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확실히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출장 업무였던 것 같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직접 경험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나에게 주었고, 21세기가 디지털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직접 발로 뛰어야만 깨우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물론 황홀한 경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나라의, 그 도시의 민낯을 바라보는 것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었다.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가보며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든 점이 참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 힘든 점을 거뜬히 상회할 만한 자극을 출장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다양한 나라와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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