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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un 11. 2023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의 무게와 파문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의 한 남매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 글을 쓰게 된 계기.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영상.

 [이산가족 Eng c.c] 전 국민을 울린 이산가족 남매 The siblings who brought the entire nation to tears (https://youtu.be/9kk11wIkCB0)




언어는 독립적인 존재들의 소통과 연결을 매개하기 위해 집단 내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규약이자 의미의 운반자라고 할 수 있다.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매번 모든 상황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기에, 언어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A와 B가 겪은 상황과 이때의 생각을 C, D, E에게 왜곡 없이 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얻어낸 그들 나름의 지혜를 후대에까지 전승시키기 위해 언어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 않도록 일관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직시적이고 명료한 방향성이 초기 언어의 필요조건이었을 것이다.


허나 인류와 문화가 융성해짐에 따라 언어는 기존의 직진적 소통 방향성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언어가 소통의 수단임을 인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이 수단을 역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거짓말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또한 극단적인 거짓말 외에도, 사람들은 본인의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한 비유도 활용하게 되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언어라는 매개체가 단순히 진실만을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까지 전달하는 수단이자 일종의 장치로 그 역할이 확장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더라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언어를 배우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비언어적 소통뿐이다.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손짓, 발짓, 울음소리 등을 통해 아이는 외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한다. 그렇게 본인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던 아이는 점차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엄마, 아빠, 밥 등 본인 앞에 놓인 현상과 언어를 연결할 수 있게 된다. 밥이라는 단어는 이후 '배고파', '밥 줘', '오늘은 단 과자가 먹고 싶어' 등 점차 긴 문장으로 확장되며 길어진 길이만큼 더 구체적으로 본인이 처한 상황과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던 아이는 점차 자라나며 언어를 평면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점차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직유, 은유, 대유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배우며 '내 마음은 호수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이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게 되며,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김광진-편지)'와 같이 감정이 담긴 언어와 글을 점차 접하게 되고 본인도 전차 언어에 감정을 싣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뻔해 보이는 말이라로 감정을 담아 사랑고백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에둘러 말하는 방식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렇게 태동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한 한 아이의 세상과의 소통은 점차 복잡하고 입체적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게 될 것이다.


말과 글은 이와 같은 발전 과정을 겪으며 단순함과 명료함보다는 복잡성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같은 상황을 목전에 두고도 사람들은 본인들의 경험과 성향, 지식수준 등에 따라 각기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돌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는 단순히 굴러가는 것에 집중을, 물리학자는 관성과 마찰력, 중력에 대한 생각을, 철학자는 돌이라는 존재의 생애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생각들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청자에 따라 효과적인 방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청자가 어린아이들인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학자들인지에 따라 필요한 수준과 관심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단 지식수준뿐만 아니라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는 문화적, 시대적 배경 또한 화자와 청자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전쟁, 기근 등 같은 시대적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겐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보다 깊숙이 와닿는 것처럼 말이다.


성공한 소설가와 시인, 카피라이터들은 이런 면에서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언어를 잘 활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대로 간병이 계속되면 부모님의 몸 상태도 걱정이다. 하지메의 우려는 강폭이 넓어지고, 어두운 물은 소리도 없이 하류를 향했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 마쓰이에 마사시)"

위와 같은 소설가의 문장은 부모님을 간병하며 커지는 우려(마음 상태)를 하류로 향할수록 크고 넓어지는 강폭(물리적, 시각적 크기)에 빗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의 인물의 감정의 크기를 잘 표현해 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소위 말하는 공감대 형성이 잘 되고 감정의 동요가 큰 글은 독자를 글 속 주인공의 위치에 얼마나 가깝게 배치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언어의 근본적인 목적은 간접경험이기에 글을 통해 청자가 그 상황을 어느 정도의 깊이로 이해할 수 있느냐가 언어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가상의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소설가의 역량이 높다면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이 가상의 존재임을 인지하더라도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동조하고 공감하게 된다. 소설과의 그것과는 약간 결이 다른 부분이 에세이나 실제 인물의 경험담인 것 같다. 정말 잘 쓴 소설은 독자의 공감을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내지만,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들의 글과는 약간 다른 영역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이기에,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 불치병에 걸려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과는 또 다른 깊이의 공감을 듣는 이로 하여금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정말로 실제의 세상에 펼쳐진 이야기이기에 본인도 그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느 때처럼 SNS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KBS에서 방영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의 한 일화를 보게 되었다. 전쟁 이후 고아가 되어 서로 다른 곳으로 입양된 남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였는데, 상황 자체도 너무 애틋하고 감동적이었지만 거기에서 오빠가 여동생에게 건넨 말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았다. 실제로 그 상황을 겪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설움과 슬픔,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재회의 반가움 등 오만 감정이 짧은 대화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 감히 공감하는 것조차도 미안할 정도로 거대한 애환이 담겨있는 말들을 들으며 혼자 눈물을 훔쳤다. 아래에 그 대화들을 남겨본다.


어린 시절 오빠는 고아원에 맡겨지고, 여동생은 이발소에 양녀로 들어가면서 김정애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제주도에 있던 여동생과 대전에 있던 오빠가 영상으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가 남매임을 확인하고 오빠가 여동생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건넨다. 어린 시절 이후로 본인의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던 여동생의 세월을 안타까워하고 또 서러워하는 오빠의 마음이 문장 문장마다 느껴졌다.


내 동생 이름이 현옥이야 현옥이. 네 이름이 현옥이라고. 김 씨가 아니야 허 씨란 말이야. 알아야지 이름은. 개도 이름이 있는데 이름이 정애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네 이름이 현옥이란 말이야.

이후 두 남매는 실제로 상봉하게 되는데, 여동생이 타고 오던 택시가 채 멈추기도 전에 뛰어가 문을 열고 서로를 마주하며 남매는 그간의 설움을 터뜨리고 재회한다. 아래 문장이 너무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


이게 웬일이냐 이게 이게 이게. 이 기쁜 소식을 누구한테 전해야 좋으냐. 부모가 있어야 전하지.

남매가 상봉하고 30년 후인 2013년 KBS 방송에서 그들은 짧게나마 소식을 전하며 위 영상은 마무리가 되었다. 요 근래 접했던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슬프고 서러우면서도 감격스러운 장면이었기에 이렇게나마 감동적이었던 표현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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