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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4. 2024

[영화 감상문] 파묘, 장재현

스포 有) 차곡차곡 잘 쌓아 올린 동양 배경의 현대 판타지 세계

0. 팩트와 픽션 사이에 놓인 창작자

유사 이래로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글로, 노래로, 영상으로 풀어내왔고, 그중 몇몇 성공한 작품들은 좋은 선례이자 이정표, 성공한 클리셰, 때로는 하나의 장르로써 후대의 창작자들에게 전승되어 왔다. 착실히 쌓여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수많은 작품들이 생겨났고, 요즈음에 와서 100% 순수한, 새로운 창작을 하기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창작자들의 역량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 들이 선점당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앗을 역사적 사실에서 찾기도 한다. 실화에 어느 정도의 각색을 거친 이와 같은 작품들은 종종 팩션(Faction)이라고 불린다. 이때 사실과 허구의 비중에 따라 작품의 방향성이나 추구하는 방향에 차이점이 생긴다. 현실의 소재나 사건이 창작을 위한 마중물이자 부싯돌 역할로만 쓰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객이 전도되어 역사적 사실 전달을 위한 매개체로써 작품이 활용되기도 한다.


'장재현' 감독의 작품 '파묘'에는 이 두 방향성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역사적 요소들이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을 위한 단초가 되어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세세한 미장센 배치를 통해 작품 자체가 역사적 사건들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무당과 지관, 풍수지리 등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현실과 비현실, 역사와 창작물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의 이런저런 감상들을 아래에 남겨본다.


1. 전체적인 전개와 구성 측면에서

본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이 네 명의 인물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화림이 미국에서 의뢰인인 박지용(김재철) 가족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아이가 앓고 있는 기이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용은 화림에게 도움을 청하며, 화림은 아이를 마주하며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 또한 이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으리라는 것을 맞춘다. 그렇게 의뢰는 지용의 아버지에게까지 이어지며, 결국 이 상황의 화근이 조상의 묫자리임을 깨닫게 된 화림은 지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묘를 이장하기 위해 상덕과 영근을 찾아간다.


이 네 명의 인물들과 지용 조부 무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들이 순차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본 작품의 큰 골자이다. 인과관계 설명과 복선 회수를 위해 많은 서사 과정이 필요했음에도 134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에 잘 풀어냈다.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과 속도 모두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장을 나누어 보여주며 각 장면들을 연결하기 위한 불필요한 서사를 덜어내기도 했고, 상황 설명과 내면 묘사를 위한 화림과 상덕의 독백 또한 과하지 않은 정도로 활용되었다.


허투루 낭비한 장면도 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첫 번째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인 화림과 봉길이 미국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비행기에 앉아있는 화림에게 승무원이 일본어로 응대하자, 화림은 자신이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며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승무원과 대화를 나눈다. 후에 이야기의 전개 상 화림이 일본 혼령, 정령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앞에서 자연스레 화림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에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 장면이 연결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화림과 봉길의 도입부 이후 이어지는 상덕과 영근의 도입부인데, 장면 자체는 두 인물의 직업과 역할을 보여주기 위한 establishing shot이지만 그중 '할머니의 틀니'에 대한 서사가 기억에 남는다. 의뢰인 가족의 무덤을 이장하기 위해 상덕과 영근은 무덤에서 관을 꺼내고, 영근은 유골을 꺼내 각 부분들이 온전히 있는지 확인한다. 이를 보던 상덕은 유골에 틀니가 없다며, 할머니의 틀니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의뢰인 가족들에게 묻는다. 그 후 자리에 있던 손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것마저 없으면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냐고 말하며 자신이 틀니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본 작품에는 배우들의 이름, 자동차 번호판 등에 역사적 요소들이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서사에도 친일파, 황국, 일본의 음양사 등 소재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할머니의 틀니마저 없으면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말하는 손자의 말은 위와 같은 과거의 역사들을 모른 채로 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러운 사견을 남겨본다. 또한, 전통적이고 현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무당, 풍수사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현대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 또한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서사 배경이 아니었을지 싶다. 포르셰를 타고 스피닝을 하는 화림, 서울의 고층 호텔에서 풍수를 보는 상덕의 모습은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느낌이다.


2. 장르 및 연출 측면에서

파묘는 과하지 않은 동양풍의 현대 판타지 세계를 잘 풀어냈다. 장면 별 맺고 끊음이 좋았고, 현실적 요소와 비현실적 장면들이 양립하며 잘 표현되어 있었다. 굿이나 파묘 장면에서는 강렬하게 동양적, 비현실적 요소들을 보여주면서도 그 외의 부분에서는 운구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장례식장에 뒷돈을 주고 관을 맡기기도 하고,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서 수술을 받는 등 무당과 풍수지리 등 만능주의적 요소로 활용하지 않았다. 물론 무당과 풍수지리라는 배경 자체가 비현실적 요소이기 때문에 위처럼 장면을 구성하더라도 장면의 현실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배경의 동양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파묘라는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적 능력의 절충점을 적절히 잡아낸 것 같다.


15세 관람가인 만큼 비주얼도 지나치게 고어하거나 그로테스크하지 않은 수준에서 구성된 것 같다. 물론 사람 머리를 한 뱀, 다이묘 정령, 목이 돌아가는 지용 등의 장면들이 다소 괴기하기는 하나, 장르 특성상 이 정도의 표현은 필요했던 것 같다. 김고은의 굿 장면을 굿이나 무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서양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봤을 때의 감상이 개인적으로는 궁금하다.


작품이 종국으로 나아가며 봉길과 상덕이 다이묘 정령에게 공격당해 중태에 빠진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인물들이 사는 것, 죽는 것 두 쪽 모두 너무 클리셰가 강하게 정립되어 있는 것 같다. 인물들이 죽을 위기를 넘기고 살아나는 것도, 동료의 죽음을 통해 살아남은 인물들이 각성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시나리오가 되어버렸다. 렇기에 이제는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자연스레 납득하게 되는 것 같다.  각 인물들이 소모되지 않고 온전히 남았으니 프리퀄뿐만 아니라 시퀄도 기대해 볼 만한 것 같다.


3. 마무리하며

소재와 구성, 연출 두루두루 탄탄한 작품이었고, 인과와 서사 또한 과하거나 비약되지 않고 차근차근 쌓아 올려지는 것이 좋았다. 장면 자체도 인상이 강렬하기에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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