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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an 30. 2024

[독후감] 파견자들, 김초엽

스포有) 제각기 다른 시선과 입장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들

0. 들어가기에 앞서


김초엽 작가는 '감각'과 '물질'을 매개체이자 일종의 '언어'로 삼아 다루는 데에 능하다. 인류에게는 생경한 방법론들을 가지고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고민을 풀어내기도 하며, 타인, 다른 개체, 혹은 세상과의 담화를 통해 존재에 대한 대담을 나누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깊은 고민 없이 <파견자들>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고, 흥미로운 고민들과 탄탄한 전개를 지켜보며 앉은자리에서 한달음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소재, 그리고 거기에서 느낀 감상을 아래에 남본다.


1. 작품의 배경 소재


본 작품은 '범람체'라는 외계로부터 온 존재에게 지상을 잠식당해 빼앗기고 지하도시로 숨어 들어간 인류 이야기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들은 지상을 포기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상을 수복하기 위해 범람체에 잠식되는 '범람화'와 이 증상인 '광증' 저항성이 높은 사람들을 '파견자'로 선발하여 지상으로 보낸다.


파견자인 '이제프 파로딘'이 전 파견자인 '자스완'에게 맡기고 간 '정태린'이라는 아이가 이 작품의 주된 화자이다. 그녀는 '선오'라는 아이와 함께 자스완 밑에서 자라며, 이제프를 따라 파견자가 되고자 한다. 그녀는 이제프를 동경하는 동시에 연모한다. 이후 착실히 성장하여 파견자 시험을 보게 된 태린의 머릿속에서 환청이 들리며 작품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태린은 어린 시절 이식에 실패한 뉴로브릭(기억을 보강하는 도구)과 뇌의 불완전한 연결이 이 환청의 원인이라 생각하며, 선오의 조언에 따라 그 '현상'인지 '존재'인지 모를 것에 '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태린은 쏠에게 시험을 방해받고 쓰러지지만, 이후의 시험에서는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쏠이라는 존재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태린은 마지막 시험에서 쏠에게 조종당하고, 지상에서 가져온 범람체 샘플을 지하에 흩뿌리고 만다.


이에 상응하는 처벌로 태린은 생환율이 낮은 프로젝트에 '마일라 로드리게스', '네샤트 데미르'라는 인물들과 함께 차출되어 파견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늪'과 '늪인'들을 만나게 된다. 늪에서 범람체들은 망을 이루고 생각과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늪인들은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범람체에 잠식당했지만 자아를 잃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늪에서 태린은 자신의 머릿속 존재인 쏠이 뉴로브릭이 아니라 범람체였음을 알게 되고, 이윽고 쏠을 매개체로 늪의 범람체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연구노트'라는 챕터를 통해 태린과 선오는 아동 보호소로 위장한 비밀 연구소(바투마스 연구소)에서 벌어진 '범람체와 인간의 결합 연구'의 실험체들이었다는, 이제프가 이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아 태린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며 쏠의 존재가 명확화 된다.


태린은 늪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고 본부에서 이 장소를 알게 되면 그들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인간과 범람체의 결합을 극도로 혐오하는 네샤트에 의해 그 장소가 발각되고 태린은 본부의 사람들에게 구출당한다.(네샤트는 늪인을 죽이려다 살해당했고, 자신의 약혼자인 오웬을 찾고자 파견을 떠났던 마일라는 늪에 오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늪에 빠져 하나가 된다.)


지하로 복귀한 태린은 파견의 결과물에 의해 정식 파견자로 임명될 예정이었지만, 범람화된 날파리들에게 정체 모를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이 메시지는 진실을 찾아 헤매다 바투마스 연구소에 도달했지만 이제프에게 발각당해 갇히게 된 선오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곳엔 선오와 범람화 발현자들이 갇혀있었고, 이제프와 상부는 발현자들을 생체무기로 만들어 늪에 투하하고 범람체들을 와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태린은 이제프와 파견자, 자신 인생의 목표였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연구소로 향한다. 결국 그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태린은 이제프를 죽이고 발현자들과 함께 늪으로 향한다.


이후 발현자들은 인간과 범람체의 공존구역인 '경계지역'을 도시의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태린은 범람체와 인류 중간의 전달자를 맡는다. 그리고 그들은 발현자가 아닌 전이자로 불리게 되며, 사람들 또한 그들의 방식이 단지 다른 방식의 삶임을 보게 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2. 인상 깊었던 부분들


작품의 전개 자체도 탄탄했고, 고민해 볼 만한 부분들도 많아서 흥미로웠다. 작품을 읽고 나서 인상 깊었던 점들을 아래에 두서없이 남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

<파견자들>을 포함한 작가의 작품들에는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론과 매개체들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냄새, 감 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감각적 묘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감정 자체가 물질화되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상과학적 요소들로만 생각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런 방식들은 자연과 닮아있었다. 페로몬으로 소통하는 곤충들, 가청주파수 바깥 영역의 주파수를 활용하여 대화하는 돌고래, 눈이 퇴화되어 후각과 촉각을 통해 살아가는 두더지 등 구에 살아가는 여러 생명들은 이미 제각기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나와 다른 존재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받아들여왔었는지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개별개체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한 고민

작품에 등장하는 '늪'이라는 공간에는 수없이 많은 범람체들이 망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뉴런과 시냅스처럼 연결된 그들은 생각과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개별개체와 자아는 불필요하며, 그렇기에 독립된 자아와 일인칭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하는 태린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늪은 여기에서 나아가 자아란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이라고, 감정이란 개체 단위로 존재하는 생물들이 주관적인 신체 감각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화적 도구라고까지 말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태린은 인간의 입장에서 자아의 중요성과 일인칭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하며, 자아의 상실은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늪과 태린은 서로의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기보다는 입장과 처지가 다르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늪의 범람체들은 태린의 안에서 독립된 존재를 유지하고 이름을 얻은 쏠을 이해하지 못하고, 쏠은 자신과 세상의 경계를 잃고 싶지 않아 한다.


개별개체의 능력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집단지성, 싱크탱크라는 말처럼 개체들이 모인 집단의 능력은 대체로 개인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이 양적 성장의 말로엔 개별개체의 존재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완벽을 추구하던 개인들이 모인 집단에서 개별성은 되레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한다. 불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집단 사이에서의 일종의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갈등 과정이 개인적으로는 흥미롭다. 순히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앞으로 살아나갈 인생에서도 이어나가야 할 고민이기에 위 고민들이 더 와닿는다.


범람체의 시선에서 본 지구. 관점과 인칭의 중요성.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늘 방심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우리와 같은 인류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이들은 외계의 존재이기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 작품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익숙한 인류에게 우리의 관점을 동화시키지만, 작품의 중반부에 태린과 범람체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범람체의 시선으로도 지구를 바라보게 된다.


왜 지성체인 인류를 공격하냐는 태린의 질문에 범람체들은 인류가 지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오히려 자신들을 닮은 균류와 곰팡이, 개미를 지성동물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랬다. 외계 존재의 관점으로 지구를 바라보면 우리는 한낱 동물 종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사실은 우리가 인류에 편향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손쉽게 묻힌다. 진정한 관찰은 자신이 속한 곳의 외부에서만 가능하다. 외부의 존재, 범람체의 시선은 우리 인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범람체 쏠의 발전과정

태린의 머릿속 쏠은 어린 시절 그녀에게 이식된 범람체였지만, 연구소에서 태린과 범람체를 분리하려는 시점에 태린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자 일종의 자결을 택한다. 이후 태린이 성장하여 파견자 시험을 보려는 무렵 쏠은 다시 깨어난다. 초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말하지 못하고 태린의 기억 속 라디오 소리 등을 들려주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의 목소리로 태린에게 말을 건넨다. 초기에 어색하고 아직 정제되지 못했던 쏠은 점차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되고 의지가 강해진다. 어느 정도 자아가 정립된 쏠은 집단이 된 다른 범람체 무리를 보고 자아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 쏠이 발전하고 자아를 얻어가는 과정이 마치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 같아서 흥미로웠다.


태린과 이제프

태린은 이제프를 동경하는 감정을 넘어 연정을 품고 있는데, 이는 작품에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반해 이제프가 태린을 대하는 태도는 초반에는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작품 중반부의 연구노트 부분을 지나며 이제프의 태린을 향한 집착에 가까울 관심이 느껴진다. 이제프가 태린을 만난 후의 인생은 모두 태린을 위한 행동들 뿐이었다. 생환율이 낮은 장기 파견을 떠난 것도, 범람체를 박멸하고 지상으로 가고자 하는 것도 모두 태린을 위한 일이었다. 작품의 종반부에 태린과 이제프는 연구소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발현자들을 무기로 쓰려는 이제프에게 태린은 자신과 그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제프는 단호하게 그들과 태린은 다르다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주도면밀하고 냉정하던 이제프는 태린에게만큼은 이성과 판단력을 잃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기에 태린과 이제프의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 애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태린은 죽어가는 발현자들과 죽게 될 늪인들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프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3. 마무리하며


서사 자체도 흥미로웠고,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생각의 씨앗들도 많아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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