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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Oct 12. 2024

PSYCHO-PASS 1기

심연을 마주한 이들의 고민과 공명

0. 들어가기에 앞서

<PSYCHO-PASS> 1기는 2012년 4분기에 방영된 22화 분량의 작품으로, 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사이버펑크 작품이자 수사극이다. 각 인물의 사상과 신념을 풀어내는 데에 꽤나 공을 들인 작품이며, 고민해볼 수 있는 소재나 생각의 단초도 많은 편이다. 아래에 인물과 소재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1. 시빌라 시스템이라는 대전제

본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는 '시빌라 시스템'으로, 이는 말 그대로 도시와 인류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 시빌라 시스템에 의해 판정된 적성을 바탕으로 직업이 결정되며, 개개인의 감정 상태가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된다. 이 스트레스 지수(범죄 계수)가 일정 수준을 넘는 것이 감지된 사람들은 범죄를 아직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안국 형사과의 감시관과 집행관에게 체포당하게 되며, 그 지수에 따라 교화를 받거나 영영 잠재범으로 낙인찍혀 감옥에 갇히기도 하며,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결처분으로 살해당하기도 한다. 시빌라 시스템은 도시를 존속시키는 대전제이자 일종의 빅브라더로써 기능한다. (범죄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시빌라 시스템은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 필요에 의해 완전무결하다는 대전제를 부여받았다. 한 시스템의 무결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외계의 관찰자가 필요하다. 이는 개념적으로 무한루프 구조로 관찰의 관찰의 관찰 형태로 연결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그렇기에 시빌라 시스템이 적용된 사회는 시스템이 무결한 존재라는 것을 가정함으로써 이 굴레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실제 시스템의 무결성이 아니라 무결한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게 하고 의심의 싹을 잘라내는 것이다. 1기의 시빌라 시스템은 이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작품을 구성하며 대전제와 시스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음을 이런 점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2. 감시관과 집행관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공안국 형사과 1계에 소속된 감시관과 집행관들이며, 집행관은 범죄 계수 상 잠재범으로 판정되어 사회에 복귀할 수 없는 이들 중 선발되어 일종의 사냥개 역할을 수행한다. 형사와 범죄자는 그 방향만 다를 뿐 범죄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며, 그렇기에 사건 현장과 범인에게 오래 노출된 형사 또한 범죄 계수가 상승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공안국은 범죄와 직면하는 집행관,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감시관으로 역할을 분리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공안국 형사과 1계에 '츠네모리 아카네'라는 신입 감시관이 발령받게되며 작품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게 된다.


완전무결해야 할 시빌라 시스템에 맹점이 존재한다는 방증이 감시관과 집행관의 존재이기도 하다. 공안국의 '카세이 조슈' 국장은 시스템이 완전하다면 드론에 범죄를 처벌하는 계측기이자 총인 '도미네이터'를 장착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에 형사과가 존재함을 언급하기도 다.


3. 마키시마 쇼고코가미 신야

아카네를 포함한 공안국의 형사들은 당면한 사건들을 차례대로 해결해나가는데, 개별 사건들로만 보였던 범죄들의 배후가 한 인물로 귀결됨을 점차 깨닫게 된다. 그 인물이 바로 본 작품 1기의 메인 빌런인 '마키시마 쇼고'라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범죄 계수를 조절할 수 있는 '면죄체질자'로, 시빌라 시스템이라는 대전제가 공고할수록 그는 더욱 자유로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그는 사건의 배후에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자와 이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자를 연결해주며 세상에 재앙을 퍼뜨렸으며, 상당한 수준의 두뇌회전과 지략, 격투 기술을 보유한 존재로 묘사된다.


마키시마 쇼고의 대척점에 선 존재가 형사과 1계 집행관인 '코가미 신야'이다. 그는 이전엔 감시관이었으나, 자신의 동료였던 집행관 '사사야마 미츠루'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에 분노하며 수사를 이어가다 범죄 계수가 높아져 집행관이 된 인물이다. 사사야마를 살해한 범인의 배후 또한 마키시마였고, 코가미는 혼자서라도 사건을 놓지 않고 마키시마의 흔적을 쫓고 있었는데 사건이 전개되며 점차 마키시마에게 가까워지게 된다. 코가미 신야는 흑발에 검은 복장, 마키시마 쇼고는 백발에 하얀 복장으로 주로 등장하는데 둘은 거울처럼 범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하며 서로의 안티테제로 작용한다.


4. 츠네모리 아카네

작품의 가장 큰 두 축은 코가미 신야와 마키시마 쇼고이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은 것이 츠네모리 아카네라는 인물이다. 신입으로 이제 막 배속된 츠네모리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형사과 1계의 관찰자 역할을 초반에 수행하지만 특정 시점 이후로는 자신이 사건을 이끌어나가며 결과적으로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진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마키시마에게 납치당한 친구가 공격당하는 것을 목격하지만, 도미네이터는 범죄 계수를 조절할 수 있는 마키시마를 쏘지 못한다. 마키시마는 츠네모리를 시험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전된 산탄총을 그녀에게 건네지만, 시빌라 시스템의 필요성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던 츠네모리는 자신의 친구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마키시마를 징벌하지 못한다. 그녀는 이에 큰 충격에 휩싸이나, 이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 마키시마를 붙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녀는 극단(極端)에 선 다른 인물들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정도를 걸어나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초반에는 다소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중반부 이후부터는 주도적으로 나서며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빌라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도 하나, 그와 동시에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있던 그녀는 후반부에 시빌라 시스템에게 끌려가 진실에 대해 통보받게 된다. 완전무결한 시스템으로 알려진 시빌라 시스템이 다수의 인간, 특히 그 중에서도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면죄체질자들의 뇌를 병렬로 연결하여 만들어진 시스템임을 그녀는 알게된다. 그제서야 그녀는 마키시마를 사살하지 않고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던 상층부의 저의를 알게 되고 분노했지만, 시스템이 붕괴되면 사회 전체가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츠네모리는 분노를 삭힌 채 그들과 반강제로 일시적인 협력관계를 맺게된다.


마키시마와 코가미만 있었더라면 모든 것이 빠르게 붕괴하고 소멸되는 파국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에 분노하면서도 전체 체계가 붕괴하는 것은 피하고자 했던 츠네모리가 마키시마/코가미/시빌라 사이의 중재자로서 작품을 이끌어나갔기에 세상은 어느 정도 존속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시빌라 시스템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었다는 사실이 츠네모리의 입장에서는 뼈아팠을 것이다.


5. 기노자 노부치카

형사과 1계의 감시관인 '기노자 노부치카'의 인생은 기구했다.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사건과 범죄에 매몰되며 집행관이 되었고, 그의 동료였던 코가미 또한 범죄에 휩싸여 집행관이 되었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점차 범죄 계수 수치가 악화되던 그 또한 작품의 종국에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고 죽은 후에 집행관이 되었다. 그는 감시관과 집행관의 임무를 철저하게 분리하며 업무에 임할 것을 츠네모리에게 강조하는데, 이는 그가 이미 많은 이들을 과거에 잃은 데에서 온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방어기제였다.


6.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기술의 발달에 부산되는 폐해가 주를 이룬다. 완전무결한 것으로 알려진 시빌라 시스템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는 면역력을 잃었다. 범죄가 당연히 일어나지 않고 사전에 차단되는 세상에 살아온 이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리고 살해당하더라도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다. 이런 낮은 면역체계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은 범죄에 노출되면 감정과 상황에 쉽사리 전염되기도 다. 기술의 발달로 육체의 영생을 이뤄낸 사이보그 인간은 이제는 영혼의 성장을 갈망하며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서 생의 희열을 찾기도 다. 시빌라 시스템에 의해 유해한 것으로 판정된 예술가들은 더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심할 경우 잠재범 판정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작품에서는 이를 '사이코 해저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빌라 판정에 의해 일찍이 장래가 결정된 사람들은 이루어지지 못한 가능성에 대해 분노하며 시빌라에 의해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앙심을 품기도 했다.


마키시마 쇼고 또한 시빌라 시스템의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 시빌라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범죄 계수가 인식되지 않는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유령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일련의 범죄를 통해 생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발버둥쳤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가 저지른 범죄의 당위성이나 면죄부가 되지는 않으나, 그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시스템의 병폐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7. 심연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은 본 작품에서 범죄 계수라는 개념으로 현현했다. 마키시마는 범죄를 사람들에게 전염시켰고, 범죄를 마주한 형사와 피해자들에겐 범죄 계수가 전염됐다. 범죄를 들여다보는 시빌라 시스템이 범죄자들의 뇌로 구성된것 또한 심연이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8. 인용

마키시마 쇼고, 그리고 그를 쫓던 코가미 신야의 대사엔 과거의 책을 인용한 문장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키시마는 종이책이 감정을 조율하는 도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빌라 시스템에 의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의견이 아닌, 아직 사람의 감정과 고민이 온전히 남아있을 시절의 생각들이 마키시마에겐 보다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메시지로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다.


9. 마무리하며

고민해볼 여지가 많은 작품은 즐겁다. 여담이지만 오프닝, 엔딩 곡도 꽤나 인상깊다. 애니메이션은 현재 3기까지 나왔는데, 3기는 1~2기와 사뭇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2기는 1기와 큰 궤는 다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1기의 임팩트가 컸기에 사이버펑크 장르나 약간 고어한 시체 표현 등에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은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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