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기에 앞서
2024년 10월 1일 15시에 CGV 용산 IMAX 관에서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고 왔다. 1편인 조커의 서사적 연장이라기보다는 세계관과 사건만 계승된 별개의 작품 느낌이 강했다. 아래에 짧은 감상을 남긴다
1. 제목의 의미; 광기와 조커의 공명
본 작품의 부제인 '폴리 아 되'라는 말은 공유정신병적 장애를 뜻하며, 직역하자면 '둘의 광기'라고 한다. 1편에서 조커가 고담시에 퍼뜨렸던 광기는 할리에게까지 가닿았고, 이 광기는 다시금 그녀를 통해 아서 플렉에게 회귀했다. 폴리 아 되는 인물 관점에서 보면 아서와 할리의 공명이었지만, 보다 기저에 깔린 것은 광기의 공명이었다. 암울한 도시와 불우한 가정환경은 아서에게 광기를 전염시켰고, 아서는 자신의 안에서 더욱 짙어진 광기를 다시 도시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이 도시의 광기는 다시 할리에게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서에게까지 전달되었고, 이 과정에서 광기는 점차 증폭되어 종국에는 아서조차 광기를 품지 못하고 조커라는 상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2.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였다
조커라는 상징 자체는 아서 플렉에게서 비롯되었으나, 한번 시작된 광기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고 도시를 집어삼켰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말로는 비참했지만, 조커라는 상징은 이미 도시를 집어삼킨 후였다. 다른 영화나 작품에서 등장했던 조커는 각 인물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이끌어 나갔지만, 토드 필립스가 만들어낸 세상의 조커는 하나의 상징이자 사상으로 자리 잡아 고담시를 병들게 했다. 인물이 아닌 감정을 중심으로 한 전개는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광기를 보여주기엔 나름 효과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3. 조커와 그의 그림자
위 내용을 단적이자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작품의 도입부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루니 툰>이나 <톰과 제리>처럼 연출된 짧은 단편엔 조커와 그의 그림자가 등장한다. 머레이 쇼가 연상되는 무대에 서기 위해 조커는 극장에 갔으나, 그의 그림자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옷장에 갇히고 만다. 이후 그림자는 조커 분장을 한 채로 무대에서 날뛰며, 조커의 본체는 옷장에서 탈출하여 이 광경을 마주한다. 이후 경찰이 조커의 그림자를 붙잡으려 하자 그는 복장과 분장을 본체에게 넘기고 다시 그림자로 돌아가며, 결국 본체가 경찰에게 두드려 맞고 체포되며 애니메이션이 막을 내린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자가 본 작품의 기저에 암약한 조커라는 악의 상징을 빗대어 보여준 상징적 존재였다. 그림자는 아서 플렉의 부산물로써 태어났으나 결국 그를 집어삼켰고, 그의 복장과 메이크업을 따라한 그림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환호했다. 이 장면이 바로 민중이 조커로 분장한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상징 그 자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조커는 아서 플렉에게 고담시가 잉태시킨 재앙 그 자체였다.
4. 그 외 요소들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 요소들을 아래에 남긴다.
작품에 노래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대부분 아서의 상상이자 그가 조커였던 순간이었다. 노래나 효과음, 대사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이 장면들이 아서와 조커의 분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의 마지막 순간 조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서 플렉은 옆에서 노래를 시작하려던 할리를 말리며 더 이상 노래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보자면 노래는 감정의 울부짖음, 말은 이성적 대화로 보이기도 한다.
작품의 초반부에 간수가 아서 플렉을 면도해 주다가 입의 가장자리에 상처를 입히는데, 거기에서 흐른 피가 아서에게 입꼬리를 그린다. 작품 중반에 아서에게 면회를 온 할리는 그들을 가로막은 유리벽에 입모양을 그리고, 거기에 위치를 맞춘 아서의 입엔 조커의 입꼬리가 생겨난다. 작품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서의 입에서 피가 흘러 입꼬리를 그린다. 이미 자생력을 얻은 조커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서 플렉을 보는 듯했다.
아서 플렉의 죄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법정이 작품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그의 상대로 하비 덴트라는 익숙한 이름의 검사가 등장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법정 폭탄테러가 일어나는데, 투페이스로 연결되기 위한 개연성의 여지를 남겼다.
호아킨 피닉스의 광기 어린 내면 연기가 좋았다. 그에 반해 상대역인 레이디 가가의 할리 퀸의 존재감이 다소 옅었다. 아서의 각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역할이었으나, 딱 그 정도의 이용가치만 있었고 자신의 필요성과 존재가치를 강하게 호소하지는 못했다.(노래야 굉장히 많이 불렀지만...)
되레 아서의 전 직장 동료였던 개리 퍼들스(리 길)의 증인 발언이 울림이 컸다. 자신에게 잘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서가 조커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그는 오열했고 좌절했다.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꽤 기억에 남는다.
5. 마무리하며
취향과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만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나, 조커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는 느낌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조커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적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변주가 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매력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하며 감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