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렁 Sep 02. 2024

[애니 감상문]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상냥한 미래를 소망하며 수라도를 걸어 나가는 "제로"라는 상징

0. 들어가기에 앞서

책략에 대해 이보다 더 훌륭하게 풀어낼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는 체스판 위에서 세상과 대국(對局)하는 플레이어이자 체스말(킹)인 를르슈로부터 시작되며, 그리고 마지막 순간 다시금 그를 통해 완결되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 각자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내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저항과 투쟁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이끌어나간다.


선라이즈에서 제작한 25화 2쿨의 총 50부작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외적으로는 메카물, 학원물이면서 내적으로는 군상극과 정치극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이다. 주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은 덜어낸, 본 작품에 대해 인상 깊었던 점들을 아래에 남긴다.


1. 작품의 전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상에는 "브리타니아"라는 범지구적 강대국이 존재하며, 이들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타국을 차례차례 침략하여 속국으로 만들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브리타니아의 식민지가 된 에어리어 11(일본 지역)이 작품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를르슈는 "를르슈 람페르지"라는 이름으로 "애쉬포드 학원"에 숨어 살고 있지만, 그의 정체는 브리타니아의 황제인 "샤를 지 브리타니아"에게서 버려진 황자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이다. 황제는 를르슈와 그의 여동생인 "나나리"의 모친인 "마리안느"가 살해당할 때 보호해주지 않았고, 이에 대해 황제에게 왜 모친을 구해주지 않았냐고 분노하던 를르슈는 협상 수단이라는 명목으로 나나리와 함께 일본으로 보내진다. 이에 대한 분노를 안고 복수의 칼날을 갈던 를르슈는 우연찮게 테러리스트와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C.C"를 마주하게 된다. 브리타니아 군에게 테러리스트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한 를르슈에게 C.C는 그를 살려주겠다며 계약을 맺으며, 를르슈는 타인의 눈을 바라보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절대복종의 힘인 '기어스'를 얻게 된다.


이후 를르슈는 황제인 샤를을 꺾고, 자신의 모친을 죽인 사람을 밝혀내며, 여동생인 나나리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기어스 능력과 뛰어난 책략을 무기 삼아 "흑의 기사단"이라는 단체를 만들며,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을 "제로"라 칭하며 브리타니아에 본격적으로 대항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집단들(흑의 기사단, 일본 내 레지스탕스 및 해방을 꿈꾸는 조직들, 브리타니아 군, 중화연방 등) 사이의 이권 다툼이 벌어지며, 압도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전황에서 를르슈가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지가 작품의 주된 관전 포인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절대복종의 힘인 기어스가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등장하나, 결국 능력을 활용하여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전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를르슈의 책략에 있다. 그는 상대방의 예측까지 상정하여 한 수 앞을 내다보며 흑의 기사단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히 기적의 존재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한 수" 앞서나간다는 점이다.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대체로 상대방보다 불리하거나 적은 패를 가지고 시작한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황을 예측하고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하며 가히 천재일우라 부를 수 있을 묘수를 만들어내는 를르슈의 능력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나가던 갈등은 작품의 마지막 순간 장렬하게 폭발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49화까지의 전개가 허술하거나 임팩트가 약한 것은 아니며, 매 화 복선을 심고 회수하는 과정도 탄탄하고 풀어내는 서사 대비 템포도 꽤나 빠른 편이지만 마지막 50화에서 보여주는 임팩트는 여간한 다른 어느 작품보다 강렬하다고 자부한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제외하였다.)


2. 당위성

본 작품의 외부적, 물질적 배경이 전쟁과 이에 사용되는 각종 무기, 로봇들이라면 내적 구심점은 "당위성과 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이익집단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십분 활용하며 민중의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제로가 단체명으로 정한 "흑의 기사단"부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테러나 해방을 전면에서 제창하지 않았고, 약자의 편에 선 "기사단"임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세상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약자를 위해 싸워나가는 존재라는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금 강조해 주는 것이 언론인 "디트하르트"의 존재이다. 본 작품이 여타 전쟁, 메카물과 가장 궤를 달리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며,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흑의 기사단과 브리타니아 양측은 모두 언론을 통해 민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주요한 장면을 방송을 해킹하면서까지 세계에 송출하기도 하고, 불필요하거나 불리한 정보는 은폐하기도 한다. 무력과 공포로 얻어낸 권력은 영속할 수 없음을 작품 내 인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선전 다툼이 벌어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코드 기어스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3. 이상과 현실, 결과론 사이의 체크메이트

본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키 플레이어이자 흑의 기사단의 주역이 를르슈라면, 브리타니아 제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안티테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를르슈의 어릴 적 친구인 "쿠루루기 스자쿠"이다. 그는 전 일본 수상의 아들이나, 전쟁에 휩싸인 세상을 구하기 위해 브리타니아 내부에서부터 바꿔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브리타니아 군에 입대한 인물이다. 세상을 파괴하고 다시금 바로 세우려는 를르슈와 내부에서 바로잡겠다는 스자쿠의 입장은 지향하는 바는 같을지라도 수단 측면에서는 대척점에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쉬이 선택할 수는 없다. 스자쿠의 방식이 더 이상적으로 보이긴 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꿈이 옳은 답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 자체를 전복시켜 다시 세우려는 를르슈의 방식이 옳다고 이성적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이와 같은 상황에서 비참하게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결과이다. 이따금은 가장 절망적인 심연에서 최선의 미래가 만들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코드 기어스의 결말은 꽤나 잔혹하다. 피로 쌓아 올린 금자탑에 가깝다. 하지만 본 작품은 왜 그래야만 했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잘 쌓아 올렸다. 왜 꽃밭이 아닌 피 위에 탑을 쌓아 올려야만 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단순히 비극을 위한 비극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겠으나 코드 기어스는 단어 뜻 그대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체크메이트를 만들어냈다. 요행을 바라고 수를 두지 않았고, 반드시 그런 결말이어야만 했던 상황을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작품의 몰입도와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었다.


4. 제로

작중 를르슈는 본인을 "제로"라고 자칭한다. 그렇다면 왜 그는 제로라는 상징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떤 집단의 차등을 구분할 때 양수(1, 2, 3...) 순서로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0이라는 숫자는 이 통상적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1순위보다 앞선 존재를 상징하기 위해 종종 활용된다. 그렇기에 를르슈는 브리타니아가 지배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뛰어넘어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제로라는 이름을 선택했을 것이다. 실제로 브리타니아에서는 황자의 서열, 황제 직속 기사인 나이트 오브 라운즈, 식민지에 숫자를 붙인 구분(에어리어 11) 등 숫자와 결부된 부분이 많아 이 0이라는 숫자가 더 큰 메시지를 가질 수 있었다.


작품의 결론과 관련해서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내용을 제외하고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0은 1을 앞선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1부터 시작하는 통상적인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를르슈가 제로를 자칭한 것은 새로운 세상의 1순위로 군림하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1로부터 시작될 세상을 열어주는 시금석이 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권력으로 보자면 숫자는 큰 수부터 1로 역행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1부터 큰 수를 향해 순행한다. 제로라는 이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0까지 역행하고, 그 후로 순행할 새로운 세상을 위해 문을 열겠다는 를르슈의 다짐이었을 것이다.


4. 마무리하며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인상 깊은 묘사나 비유, 상징들이 많이 등장하며, 3번 정도 정주행을 했는데 볼 때마다 몰입해서 보게 되는 작품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인 것 치고는 인물들의 독백, 나누는 대사들도 꽤 심도 있는 편이다. 그림체와 다소 중2병스러운 대사들이 진입장벽이 되기는 하나, 이를 감안하고라도 한 번쯤은 보기를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감상문] 데드풀과 울버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