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희랍인을 먹는 악어
우활(迂闊)*한 우화(愚話)**. 서늘한 공기에 치여 잠을 설치던 간밤에 머릿속을 스쳐간 단어뭉치를 구태여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었다. 의식의 세계에선 좀체 현현(顯現) 하지 못하던 단어들이 손을 맞잡고 무의식의 세계에서 침출(浸出)되기를 도모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랍과 악어는 최근 수년간 나의 일상의 편린(片鱗)조차 취한 적이 없었던 존재들이지만, 나의 생이 시작된 이후로 분명하게 나를 스쳐갔었음에는 결단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사고(思考)의 영역으로 침잠(沈潛)하자면 밝아오는 하루를 제물로 바쳐야 함을 뼈아프게 알고 있었던 의식과 무의식은 재빨리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덜어내고자 하였으나, 한 번 물꼬를 튼 생각의 수류(水流)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본 시계의 시침은 3과 4의 중간 어드메에 놓여있었다.
* 우활하다(迂闊하다): 곧바르지 아니하고 에돌아서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 우화(愚話): '어리석은 이야기'라는 의미로 활용 (어리석을 우 + 말씀 화)
일순간 창발(創發)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희랍인', '먹다', '악어'라는 생각의 씨앗들은 개별적으로는 명료했지만, 합치(合致)를 이루기엔 다소 부자연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작금(昨今)의 나는 여명(黎明)과 동떨어진 3시의 새벽녘에 이런 이질적인 존재들과 결부(結付)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왜 나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자명(自明)한 혼란을 즐거이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선연(鮮然)한 현실의 촌극(寸劇)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의식 기저(基底)에서의 지령(指令)이었을까? 애석하게도 이를 판단할 능력과 의지 모두 나에게는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늪지대에서 기어 나오는 악어 한 마리만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악어는 그렇게까지 우매(愚昧)한 동물이 아니다. 대중매체가 그려내는 악어는 포악하고 공격적인 폭군(暴君)이지만, 현실의 악어는 적어도 사리 분별(事理分別)을 훌륭히 해낸다. 자신보다 강하다고 판단되는 존재에게는 쉽사리 이빨을 들이밀지 않는다. 마사이마라***에서 마주했던 악어와 하마는 서로의 생의 무게를 훌륭하게 가늠하여 이를 바탕으로 존립(存立)하며 서로의 생을 영위(營爲)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무의식 속에서 악어는 희랍인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살육(殺戮)을 결행(決行)했다. 그들에겐 생의 영위(英偉)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동기가 있었던 것일까? 혹은 왜곡된 판단이 그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가로막았던 것일까? 무의식 안에서 피어오른 존재의 진위(眞僞)를 파해친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겠으나, 이런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없는 고민과 생각은 언제나 나를 고양(高揚)시키곤 한다. 그렇게 한참을 더 악어와 희랍, 늪지와 먹이사슬에 대한 생각의 타래를 풀어낸 후에야 나는 다시금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비록 수 시간 후에 막이 오를 새로운 하루가 이 모든 고민과 생각들을 눈 녹듯 녹여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사고의 과정이 퇴색(褪色)되거나 폄하(貶下)되는 사태는 쉽사리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 마사이마라(Masai Mara) 국립공원: 케냐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덧. 후기
위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한자어를 많이 활용하였다. 순우리말로 풀어낼 수 있을 내용도 조금은 억지스럽게 한자어를 활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실험이자 시도이기도 했지만, 굳이 억지로 한자어를 포함시키려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단어 중에서 한자어의 비중이 높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한자어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순우리말보다 상대적으로 함축적이다. 위 글에서 형식적으로 한자어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새벽녘에 잠을 설치고 깨어나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드는 화자의 시점과 상황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함축적이고 깊게 생각해야 하는 한자어를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이 화자라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표현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순간이 창작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자 어려움이기도 하다.
'희랍인을 먹는 악어'라는 문구는 실제로 새벽녘에 잠에서 깼을 때 머릿속을 우연히 스쳐 지나간 생각들 중 하나였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얼토당토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매지만, 이 문구가 유독 머릿속에 기억에 남았었기에 관련하여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우활한 우화'라는 문구로 연결되며 글은 시작될 수 있었다.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쉬운 방법론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겪어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글을 쓰는 능력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지 종종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지금은 가능한 만큼 다양한 글을 써보는 것이 나에게 보다 도움이 되는 행위일 것이라 믿기에 그 시작이 어떻든 간에 글을 써보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