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꿈에 잡아먹힐뻔했다. 실존하는 존재들의 면면과 목소리가 꿈에서 깨어난 후까지 메아리치며 기억과 허구의 벽을 무너뜨리려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경계를 갈음하지 못하면 이 둘이 하릴없이 섞여버리고 말 것임을 슬프게도 직감한 나는 한시바삐 현실과 꿈을 갈랐다. 그러고 나서야 바라본 시계는 새벽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태양이 제 몫을 다하기엔 수 시간이 남은 때였다. 빨리 잠드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현실에서 도려낸 꿈이 눈꺼풀을 치켜들고 놔주려 하지 않았다. 그 안엔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었던 행복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속에선 편리하게도 얼굴조차 잊어버린 이와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존재했던 적조차 없는 온기 또한 느낄 수 있다. 이미 몇 번이고 그 허상에 속아 넘어갔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가 회고를 통한 진보에 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에도 능했다. 감각과 기억은 이미 존재를 잊었지만 오직 감정만이 십 년도 더 된 마음의 잔향을 머금고 있었고, 그 잔향은 나를 아릿하게 저몄다.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는 꿈이라는 형태로 제멋대로 빚어졌고, 이윽고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진실까지 나의 코앞으로 끌어올리고야 말았다. 너의 이름 두 글자가 문득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그때의 난 자신의 감정에 온전히 솔직하지 못했다. 부족했던 용기는 배려라는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가면으로 덮였고, 전해졌을지도 모를 진심은 그 가면 뒤에 안주하며 새로운 갈래의 이야기로 뻗어나가지 못했다. 이제 와서 후회 섞인 회고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생각과 모든 생각과 행위가 필요와 효용을 가져야 할 당위성은 없지 않은가 하는 제멋대로인 생각은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며 서로를 죄기 시작했다. 그제야 번잡했던 머릿속은 새벽 3시 무렵에 걸맞은 잔잔한 파고를 갖게 되었다. 태양이 떠오를 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금 잠의 영토로 향했다. 발길이 가닿을 곳이 공(空) 일지, 몽(夢) 일지는 나 자신도 당최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