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https://youtu.be/-jmxIotiBQ0?si=Pssihcty0YZFuG-G
이분법과 흑백논리, 갈라치기가 팽배한 요즈음이다. 발전하는 기술은 정론과 곡해를 편견 없이 빠르게 세상으로 확산시키는 필연적 양날검으로 기능하며, 이에 기인한 감정의 격류는 박차를 가하며 인류를 뒤흔든다.
유사 이래 인류의 갈등은 큰 궤에선 차이가 없지만,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만큼은 과거와 현재를 비견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42.195km를 뛰던 인류는 이제는 수 초 내로 지구 건너편의 소식까지 접할 수 있고, 심지어 우주에서도 지구와 교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동일한 양의 갈등일지라도 과거에 비해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을 것이다.
과거 정보의 불균형은 일방적 우위로 작용할 수 있었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에서 꾸며내는 중상모략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정세와 여론을 흔들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기울어졌던 운동장을 약간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한 사람의 발언은 삽시간에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고,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의 혀에 목을 감긴 채 죽어갔다.
"우아한 위선"은 정보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상당히 강력한 무기다. 퍼져나가는 정보는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동시에 거짓과 위선을 사실인양 퍼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은 점차 진실을 담아내는 직유적 유리병이 아니라 수 차례 진의를 헤아려야만 하는 갈색 약병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람들이 갈색 약병을 혐오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약병을 받는 동시에 상대방에게 건네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류는 투명도가 다른 여러 병들을 골라가며 다른 인류와 생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갈색 병에 익숙해질 무렵, "정직한 야만"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진의를 숨기는 대화법에 익숙해지는 동시에 피로감을 느껴오기도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생각을 투명한 병에 담지도 않고 머그컵에 담은 채로 상대방에게 흩뿌리는 이가 등장한 것이다. 적정한 거리감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일순간 당황하고 불쾌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겹겹이 쌓여있던 내면을 오감으로 직시하는 일종의 해방감이자 약간의 배덕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클리셰(Cliche)는 자신의 효용이 가장 커졌을 무렵 역설적이게도 자신과 반대되는 존재를 새로운 클리셰로 탄생시킨다. 우아한 위선이라는 상당히 막강했던 클리셰는 그렇기에 자신에 반하는 정직한 야만을 새로운 클리셰로서 세상에 가져올 수 있었다. 과연 다음 클리셰는 다시 우아한 위선이 될까? 아니면 정반합에 의해 새로운 존재를 빚어내게 될까? 궁금함을 마지막으로 사견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