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취미인 필자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사진에 있어서는 '초보' 수준도 안된다.
'초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초보’라는 말을 좋아한다. 누구도 초보가 아니었던 적이 없기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 안도감, 편안함, 그리고 풋풋함까지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다. 초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뒤에 따라오는 단어의 근본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초보운전자’도 엄연히 운전면허를 취득한 운전자이고, ‘초보 아빠’, ‘초보 직장인’. '초보 기술자' 모두 충분히 그 직함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또한 초보 단계가 지나면 우리는 나름의 베테랑이 될 수 있으므로 초보는 영원한 상태가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에게 초보라는 단어는 반가운 만큼 뼈아프게 다가온다.
난 언제부터 상담심리사인 거야?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학부 4년, 대학원 2~3년, 그리고 수련 과정 1년(수련이 대학원 과정에 포함되는 경우라면졸업과 동시에 이 요건을 채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상담심리사2급' 또는 한국상담학회의 '전문상담사 2급’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수련 사이사이 석사 졸업자가 응시할 수 있는 ‘임상심리사2급’, ‘청소년상담사 2급’ 등의 국가 자격증 또한 취득할 수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언제부터 상담심리사인 거야?'
* 학부만 졸업하고 경력을 쌓은 후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 등 여러 루트가 있지만 필자가 석사를 졸업하였으므로 이 글에선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 있지만, 자신 없습니다.
스스로를 상담심리사로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겠다. 가장 엄격한 요건을 갖춘 학회자격증(상담심리사 2급, 전문상담사 2급) 취득 이후, 석사 졸업 후 응시할 수 있는 국가자격증(임상심리사 2급, 청소년상담사 2급) 취득 이후, 상담심리학 관련 석사 졸업 이후, 또는 자격증 없이 n년의 경력을 쌓은이후 등. 어떤 기준을 삼아야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겠지만, ‘상담심리사’라는 이름의 자리를 뽑는 채용 공고에서의 자격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상태라면 나를 그 직함으로 소개하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아주 안전하기는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직급은 인턴, 급여는 '없음'
상담심리사라는 직함의 부여가 다른 직업보다 훨씬 엄격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매우 동의한다. 상담은 상처받은, 그러니까 이미 취약해지고 아픈 사람들이 받는 것이다. 자격이 없는 자가 함부로 상처받은 내담자의 마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계산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엄격한 기준은 다른 이의 자존감을 지켜야 하는 상담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아이러니가 된다. 이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마 ‘급여’ 일 것이다. 나는 석사 졸업 후에 1년 여의 경력이 있고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이지만 현재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한상심 2급의 수련 요건을 아직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켜 주는 기관에 '인턴 상담사'로 입사한 것이다. 인턴 상담사를 채용하는 대부분의 기관이 무급 채용을하거나 소정의 금액을 받는다.
* 물론 상담 전공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고, 드물지만 인턴 수련생에게도 급여를 지급하는 상담센터들이 존재합니다.
돈 받을 자격
석사 졸업자가 무급으로 근무해야 하는 구조적 현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이고, 그것에서부터 시작하기에는 내 현실을 챙기기 급급하다. 또한 수련생에게 급여를 주지 않는 것이 이 분야의 당연한 관행임에도, 내가 일하는 센터 측에서 무급 채용에 대한 미안함을 여러 차례 전달한 것이 나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무급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도 지금 다루고 싶은 문제는 아니다. 돈 안 주는 거 알면서 지원한 건 나 자신이고, 가족들과도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쳤으니까.
다만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무급’이라는 것이 마치 ‘넌 돈 받을 자격이 없어.’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급여와 관계없이 내담자를 만나는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르므로 나는 성실하게 근무한다. 매주 내담자를 만나기 전, 그날 상담에서 다룰 내용을 계획하고 정리한 후 상담에 들어간다. 상담 이후에는 그날 상담에서 나누었던 내용들, 차회기 계획, 내담자에 대한 인상 및 행동, 상담자 개입 방법 등을 꼼꼼히 정리해 둔다. 또한 상담 중에도 내담자의 말 한마디와 감정 한 꼭지를 놓칠 세라, 나 스스로도 놀라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조금이라도 개입이 어려운 내담자에 대해서는 슈퍼비전을 받기 위해 A4용지 1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 모든 성실함의 보상이 ‘내담자가 심리적 어려움이 개선되었음을 상담사에게 보고하거나 상담사가 직접 느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내 자격에 회의를 느낀다. 내 상담이 돈 한 푼 못 받을 정도로 가치가 없는 것 같진 않는데, 내 통장 잔액은 지금 16,000원이다(평소보다 많은 금액이다).
'초보 상담심리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이러한 현타에서 시작된 ‘나는 언제쯤 ‘진짜’ 상담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결론은'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나를 '초보' 상담심리사로 소개하기로 했다.내가 상담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고 나는 확실히 그것이다. 따라서 아직 상담사가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라벨은 괜히 심술이 난다. 그러나 수련 중이라 급여가 없는 상담사인 나를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저 ‘상담심리사’라고 소개하는 것은 나의 괜한 윤리적인 기준에서 개운치 않다. 그래서 나는 ‘초보 상담심리사’가 되기로 했다. 엄격한 기준 하에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급여를 받는 ‘진짜’ 상담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는 아직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훗날 내가 진짜가 되었을 때,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후배들을 더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내 전문성에 대해 자신 있으면서도 겸손해질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이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수련받는 과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 글이 같은 분야, 또는 다른 분야의 무급 종사자들, 수련생들, 초보자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초보 상담사로서 매우 뿌듯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