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예민한 사람의 고질병인 식도염을 크게 앓았다. 액체를 삼킬 때조차 느껴지는 이물감을 비롯하여 작열감, 속 쓰림, 더부룩함 등의 증상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위식도 역류질환 분야의 베테랑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았다. 전문의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는지를 나름 꼼꼼하게 알아보았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많이 호전되었다. 역시 경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재차 느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어떤 질환이 생기면 그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인 의사를 찾을 것이다. 가격 차이에 따른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초보 의사에게 내 아픔을 맡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상담은 센스로 하는 게 아니다
심리상담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 많은 내담자군을 만나 본 경력 있는 상담사일수록 호소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상담사의 전문성을 평가할 때에는 학벌이나 연구 경력보다 상담 실무 경력을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스터디 중, 감탄스러울 정도로 적절한 말을 하는 상담 예시를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적이 있다. 그것을 본 인턴 동료가 교수님께 질문했다.
“교수님, 이런 말을 하려면 센스가 있어야겠네요.”
그때 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상담은 절대 센스로 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공부와 경험이 뒤 따를 때 비로소 상황에 적절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그야말로 상황에 적절한 언어로 우리에게 경험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고, 이것이 나에게 큰 깨달음이 되었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전문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의 경력이라는 당연하면서도 간단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이런 사실은 아직 경력이 없는 나에게 쓰디쓴 좌절을 주기도, 앞으로 경력을 쌓아나갈 나에게 달콤한 희망을 주기도 한다.
초보라서 미안합니다.
내가 아직 경력이 부족하다는 사실로 인해 가장 미안한 대상은 바로 내 내담자들이다. 비록 학생들은 무료로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등록금에 포함된) 학생 복지 차원의 일환으로 상담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저렴한, 혹은 무료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내 자신이 무료에 걸맞은 상담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내담자에게 내가 최선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자꾸만 작아지고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지인들은 스스로를 너무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을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덜 미안한 초보가 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내담자들에게 덜 미안해질 수 있을까? 인턴으로 입사하고 첫 접수면접을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어쩌면 내 경력에 자신 있어질 때까지 계속될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잠자고 먹는 시간 빼고 공부만 해서 경지에 다다른 자들과 발을 맞추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해답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초보’다워지려고 한다.
초보는 서투르고 어설프다. 자주 머쓱하고 죄송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고 싶어 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계속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열등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초보의 특징들을 곱씹으면서, 내담자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담자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서툴고 어설퍼서, 지나친 책임감과 자기 부적절감으로 인해 힘들어서 상담에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그들이 직업적으로 충분한 전문성을 지녔거나,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노련한 사람으로 여겨지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아직 능숙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닮아 있는 우리(내담자, 그리고 나)가 함께 호소 문제를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동지애'를 느낄 수도 있다.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군요.’
사람들은 서로가 가진 아픔이 닮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미주알고주알 없이도 왠지 내 마음을 잘 끄집어 내주고 잘 읽어줄 것 같다.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군요.'라는 생각에 단단한 외로움이 조금은 말랑해질 수도 있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나와 다르지 않은’ 상담사이고 싶다. 이 것을 나도 아직 초보라며 자기 개방을 하겠다는 이야기로 오해하지 않기를. 단지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언어와 눈빛을 전달하고, 내담자가 공감을 필요로 할 때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겪어 본 것 같은’, ‘좀 더 자유로워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내담자가 갖게 하는 그런 상담을 하고 싶다. 때때로 내 초보적 열정에서 나오는 성급한 공감으로 인해 내담자가 당황할 수도 있고, 조금 이른 타이밍에 내담자의 감정을 끄집어 내려다 도리어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노련한 척’ 하기보다는 ‘정직함’을 택하겠다. Carl Rogers가 말한 상담사의 필수적 요소 세가지(진솔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중 초보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솔성'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내 실수를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며, 필요하다면 내담자의 부정적인 피드백도 기꺼이 다룰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초보다워지는 것에 능숙(?)해지지 않을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실수는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며, 정직하게 직면하고 수습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걸 내담자들이 조금이나마 모델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초보인 것에 능숙해지기
노련하고 전문적인 상담사가 가진 장점을 내가 가진 초보적 특징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이 지금 상담을 필요로 한다면 제발 경력이 있는 상담사에게 가라(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전문성이 있는 상담사는 모두 경력이 있지만, 경력이 있는 상담사가 모두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내가 현실적으로 갑자기 베테랑이 될 수는 없기에, 초보들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태도는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고찰해 보았다. 이런 지속적인 고민들도 내담자들에게 덜 미안해지도록 할테니까. 그러다 보면 조금은 더 자신감 있는 초보가 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