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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리 Sep 05. 2022

에세이와 두 번째 연애


상담심리학과의 첫 번째 연애


  누가 뭐래도 내 첫 연애 상대는 ‘심리학’,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상담심리학’이다. 전공을 살리지 않은 내 모습은 상상해 볼 수도 없었다. 때때로 다른 길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그리 본격적이지 못했다. 학부 졸업 후 적지 않은 월급을 만질 기회들이 왕왕 있었으나 굳이 잡지 않았고, ‘돈 주고 다니는 회사’라는 주변의 모진 잔소리에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끝내 큰 거 두장(요즘은 0 하나 더 붙은 걸 ‘큰 거’라고 표현한다지만, 나는 아직 간이 작다.) 값의 석사 학위를 따냈고, 학위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전공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내 첫 연애를 간단히 평가해보자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실패한 연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는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애틋하고 절절한 첫사랑이다.


상담에 대한 오해


  상담심리학과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한 가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상담은 많이 듣는 만큼 많이 말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오해. 내담자에게 내가 얼마큼 당신을 도와주고 싶은지를 이해시키려면 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을 꽤나 잘 정리해서 말할 줄 아는 내가 상담사의 길을 선택한 것을 운명이라 여기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하는 나름 수준 높아 ‘보이는’ 위로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적성 그 자체인 줄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상담은 조언보다 경청이다.'


  실상의 상담은 너무나도 달랐다. 달라야만 했다. 상담사의 말이 내담자의 상황에 아주 적절한 말이 아니라면, 오히려 상담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또한 말이 앞서는 상담사를 앞에 두고 자신의 속마음을 자유로이 꺼낼 수 있는 내담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상담사가 말 한마디 안 하고 경청만 해도 그날 내담자가 만족하며 돌아갈 수도 있는 것, 그게 바로 상담이었다.


집어 든 말들


  그래서 내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그럼에도 아직 나는  적잖이 수다스러운 상담사이다.). 내담자를 위로하고 싶은 서툰 마음만 앞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것이 언뜻 그럴 듯 한 말일지라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내담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초보인 내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마음속에 주욱 널어놓고, 그중 가장  적절한 말을 고르고 골라 두어 개 집어 들곤 한다. 집어 든 말을 내담자에게 건넸을 때 내담자가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나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


  널어놓기만 하고 집어 들지 못한 숱한 말들을 마음속에 하나둘씩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건 결국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내담자 각자에게는 소용없는 말들이라도 누군가가 들으면 위로를 얻게 될 수도 있는 말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접어놓고, 쌓아놓고, 개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리한 것들을 조금씩 꺼내서 글로 쓴다면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리고 나에 대한 위로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 대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함께 찾아왔다.


'읽히는' 특권


  그러나 나는 바보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면, 그 ‘누군가’가 내 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쓴 글이 타인에게 어떠한 종류의 감상을 제공하는 것은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이들의 특권이다. 종이를 빼곡히 채우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가 채운 글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일이다.



솔직한 고백 


  그렇게 글을 써 볼 생각에 설렜던 내 손가락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주춤거렸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을 되뇌었다.

“그래서 너는, 작가가 되고 싶은 거야?”

이 질문에 대해 내 마음이 솔직한 고백을 했다. ‘나는 비밀노트에 쓰는 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그동안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의 소망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자, 에세이와의 연애가 시작된 찰나였다. 그동안 알아주지 못한 이 마음이 나에게 얼마나 서운했을까.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했다. 


소소한 목표를 가지고


  우선은 제대로 된 플랫폼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올리는 것을 단기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으니, 첫 번째 목표는 이룬 셈이다. 이다음 단계의 달콤하면서도 허황된 일들은 지금 내 깜냥에 넘 볼 고민은 아니다. 일단은 ‘꾸준하기’. ‘성실하기’, ‘진솔하기’ 세 가지 좌우명을 가지고 마음속에 정리한 말들을 꺼내 보려 한다.


모든 연애는 아름답다.


  에세이와 두 번째 연애를 시작하는 과정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많은 연애가 그렇듯 사랑이 시작된 이유도, 시기도 불분명하다. 그냥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간단하다. 하고 싶다면, 한 번 해 볼 밖에. 그렇게 첫 번째 연애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첫 연애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으로 시작된 거니까. 아마 이해해 줄 것이다. 연애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의미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연애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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